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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살이

한편 슬럼프를 반기게 되다

O:nle 2020. 10. 18. 03:21

무업자가 되고 나서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관계'다. 나의 경우, 직장생활을 하며 일과 결부해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자문을 얻는 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나 상담일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처음 만나는 사람과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찾아온 한 명 한 명, 그 사람의 인생을 통으로 가져와 나에게 보여주는 것 같아 늘 감사했다. 20살은 20년의 삶을, 50살은 50년의 삶을. 살면서 겪어온 '일과 삶'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이 나를 깨닫게 하고 가르침을 주었다. 도처에 스승이 있다는 말이 절로 와닿았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멈추고, 새로운 방식의 생존을 시작하면서 '스승'이 살아진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내가 직접 사람을 모우고, 소통하는 일을 시작했다. 요즘 가취관이란 신조어가 있다. '가벼운 취향위주의 관계'란 뜻인데, 살롱문화와 가깝다. 책을 매게로 일과 삶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눴다. 어느 때는 친구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를 털어내기도 하고, 배우자에게도 하지 못한 솔직한 마음을 내보기도 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이 모임 또한 멈추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보니, 뭔가 '하고자'하는 마음의 불씨가 꺼져만간다. 슬럼프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의미없이 인터넷 검색하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런 나를 질타했던 시간도 백수가 되면서 이미 한 번 겪었다. 그때 새롭게 불씨를 키워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산책'과 '명상'이었다. 당시 산책과 명상을 꾸준히 하며 무언가를 깨닿고 새로운 의욕이 나를 이끌었는데, 지금 나는 또 제자리에 있는 듯 하다. 내 안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감정에 휩싸이고 그 감정이 태도를 만들어 냈다. 무기력한 태도는 삶을 지탱하는 건강한 텐션을 없애버렸다.

 

불과 몇달 전 내가 겪은 슬럼프와 지금,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첫번째는 나의 생활 리듬을 결국엔 찾아낼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한번 해봤으니까, 뭐라도 내가 할 것임을 알고 있다. 두번쨰는 이렇게 지내는 나를 질타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과거 경험에서 그 일이 나에게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다는 걸 알았다. 세번째는 내 열정에 마중물을 붓기위해 성취하기 쉬운 미션을 스스로 제시한다. 이또한 그 전의 경험으로 터득한 방법이다. 미션으로 내 몸을 움직이고 집밖을 나서게 한다. 그렇게 내 에너지 주파수를 높이고,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려한다. 추가로 이번 슬럼프에선 또 하나 건진게 있다. 그간 나는 새로운 관계에 나를 개방하지 못했다. 내가 의도를 낸만큼, 결과를 얻어간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스승이 필요하면 스승을 찾아낼 것이고, 동료가 필요하면 멋진 새동료가 생길 것이다.

 

새로운 생존 방식에서도 '관계'는 중요하다. 관계의 고립은 슬럼프를 쉽게 불러들인다. 무업자 도처의 스승을 찾아야한다. 도처에 우정을 나눌 친구를 찾아보려 한다. 아! 산책하며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앞으로 무업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청년백수,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백수, 중년의 실직백수, 말년의 노동해방백수까지. 이들 모두 백수의 시기, 유사한 감정기복을 겪으며 삶을 그려간다. 나이와 상관없는 '백수모임'을 통해 건강한 삶의 텐션을 유지하고, 유대감을 얻고, 세대가 공감하는 경험을 가져보면 좋을 듯 하다. 실제 '니트컴퍼니'라는 가상 회사를 만들어 이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밖에서도 갭이어 기간 학습을 위해 모이는 모임이 상당히 많다. 무업자의 독서모임을 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진행해보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슬럼프는 주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다. 목표를 알지만, 슬럼프가오면 또 내 루틴이 깨지고, 버벅이며 시간을 보내겠지... 그때 난 버퍼링을 하며 원래 속도를 찾고자 이번 경험을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음을 얻는다면, 다시 찾아올 슬럼프도 기꺼이 반겨줄 의향이 있다. 다만 이 주기가 너무 빨라지지 않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