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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살이

조각난 시간의 피로감과 몰입의 중요성

O:nle 2020. 6. 8. 10:41

아르바이트 2달 째, 이번엔 동네 행정복지센터로 파견을 가 코로나19로 인해 지원하는 사업을 안내하게 됐다. 하루에 많이는 2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해 필요한 제도를 신청 또는 신고하거나, 서류를 발급 받아갔다. 또 애완동물 광견병 무료접종을 하고자 들리기도 하고 주민자치회 회의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각 통장들은 주기적으로 센터를 방문해 전달할 내용을 확인하고 간다. 이 밖에도 팩스를 보내기위해 오는 사람, 복사 해달라며 오는 사람, 해당자가 아님에도 복지혜택을 요구하러 오는 사람, 물을 마시러, 잠시 쉬었다 가려는 사람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이유를 갖고 이곳을 들린다. 그 사이에서 나는 파편화된 하루를 보내는 직원들을 발견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진행하지만, 한 가지 일을 집중해 추진하기가 매우 어렵다. 주민분들이 언제 어떤 일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오면 최우선으로 민원 처리를 한다. 어떨 땐 그 일이 금방 끝나기도 하고,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수시로 전화벨은 울리고, tv에 새로운 이슈가 나오면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이처럼 예측불가능하게 주어지는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이 이들이 맡은 업무 중 대부분이다. 와중에 술을 먹고 밑도 끝도 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지원 제도의 기준에 대한 불만으로 담당 직원에게 욕설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민원인의 분노가 옮겨갈 때는 부정적 정서에 휩사이게 돼 다음 일을 이어가기 어려워 보인다. 일부 보어아웃을 겪는 사람도 있어 보인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관심있는 일을 맡았다기 보다 상황에 따라 떨어지는 일을 이행한다. 그러다 보니 직무와 관련된 역량을 늘리려는 욕구가 저조하다. 더불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해보려는 창의성을 격려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딥워크'를 행하기 정말 어려운 환경이다. 나 또한 한 달간 파편화된 시간 속에 있었고 피로감을 느꼈다. 짧은 기간 아르바이트라 책임질 일 없고, 한정된 업무를 하고 있어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음에도 그러했다. 왜 일까?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 적은데 피로감을 느낄까? 먼저 현재 흘러가는 시간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생산성을 고려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오가며 유익하다 생각되는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검색을 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끝 없이 얻고자 했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단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자꾸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익히고, 바꾸려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분주해 졌지만, 여전히 의미없이 시간이 흘러간단 생각이 일었다. 결국 현재를 온전히 갖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과거의 산물'이라고 한다. 어느새 생각에 가려 제한적인 현재를 경험하고 있었다. 

 

예기치 못하게 나의 주의를 흐트리고, 일상을 파편화 시키는 요물은 나의 생각이었다. 생각에 대한 반응은 빈번히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과거 하드워크를 중요시 했다면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인공지능이 생기고 '스마트 워크'로 옮겨갔다. 스마트워크는 '끈임없는 연결' 시스템을 이용해 일의 효율을 높이는 다양한 방식을 소개해왔다. 그러자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파편화된 일상이 지속되면서 피로감이 커졌다.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자 이제는 일과 삶을 분절시키려는 시도가 시작됐다. 사무 공간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부서내, 부서간 다양한 연결을 시도하고자 벽을 허물고, 파티션을 없애는 등 개방형 사무공간에서 이제 집중력을 높이기위한 폐쇄형 사무 공간을 선호하고 있다. 스마트워크에서 몰입도를 높이는 딥워크로 향하는 중이다. 나 또한 스마트폰의 모든 알람을 끄고, 소셜미디어나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는 시간 잡아먹는 하마들을 삭제했다. 그리고 퇴근 전까지, 내가 집중해서 완성해야 할 일에 집중해 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딥워크의 좋은 사례로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일하는 방식을 모델로 삼고 있다. 몰입할 일과 그렇지 않을 일을 이분화해 시간 활용한 칼 융, 자신만의 의식을 통해 규칙적인 삶을 유지한 다윈. 이같이 큰 업적을 낸 사람들이 일했던 방식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연결될 수 있는 현재, 결국 연결되는 미혹을 떨져내기위한 노력이 필요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내 시간은 오늘도 그냥 그렇게 흘러 간다. 최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조각난 삶을 연결시키는 힘은 결국 '몰입'에 있었다. 몰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위해 우리는 잠시 '언컨택트'가 필요해 보인다.

두 달 째, 알바가 나이게 선물해 준 것은 조각난 시간이 주는 피로감과 몰입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나의 아버지는 한 지역에서 30년이상 공직생활을 하다 지금은 퇴임하셨다. 단 하루도 빠지지않고 출근시간보다 이르게 집을 나섰고, 그렇고 30년을 한결같이 일하셨다. 내가 나이가 드니 '꾸준함'을 무기로 가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는다. 남들은 '공무원이라 편하게 일했지!'라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일터였을 한 동사무소에서 히어로를 본 느낌이다. 그래서 아버지께 존경스럽고 감사하단 문자를 보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