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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살이

나를 가만두니, 비로소 생기는 변화들

O:nle 2020. 4. 18. 07:55

직장생활로 생계유지를 10년간 해왔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점점 하고 싶은 일로 옮겨갔다.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져 여러 경험을 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임시 휴업하고, 자립해보려는 요량으로 직접 일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멈춘지 8개월, 통장에 잔고가 바닥나고 있다. 바닥나는 잔고와 함께, 그간 나에게 생긴 변화를 살펴본다.

 

8개월동안 힘을 추욱~ 빼고, 흘러가는데로 내버려 뒀더니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일상'을 알게됐다. 야간모드인간이라 아침에는 9시까지 잠을 잔다. 그리고 새벽 2~3시까지는 깨어 있곤 했다. 그 시간까지 정주행으로 2~3달동안 드라마를 섭렵했다. 그레이아나토미는 나의 인생드라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책을 빌려와서 손 가는 곳마다 책을 늘어놓았다. 어쩔때는 읽기도 했다. 그러기위해 2주에 한번씩 도서관을 꼭 갔다. 우연히 알게된 책들이 좋았다. 식사는 아침, 간식, 저녁으로 먹는게 부담없고 좋았다. 저녁은 가족이 함께 식탁에서 먹는 것이 즐겁다. 가끔 가족끼리 티타임을 즐기거나 야간데이트 하는 것이 행복하다. 오전에는 주로 집에서 집안 일을하고, 오후에는 산책을 가거나 장을 본다. 장은 조금씩 자주 보는 편이고, 비닐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주로 연결된 사람들은 가족, 독서모임 그룹, 남편의 친구들, 멀리 거주한 나의 친구들, 과거 직장동료, 내담자들이다.

 

보통 주부의 생활이었다. 어쩔때는 직장생활을 잠시 멈춘 이유와 목적을 잃은 것 같았다. 느슨해지고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거 같아 자책도 해보고, 목적을 억지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강제성이 없으니 원치 않은 일을 중요하다고 쉽사리 시작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정확한 동기와 이유 없이는 남들이 한다고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무슨일이든 시작하면 성취가 있었으나 '어쩌다' 걸리는 경우는 적었다. 날 다그치는 날이 있다면 고민해야봐야겠다. 움직일 만큼 불안하지 않은 건지, 아님 행동하는 것보다 자책이 쉬웠던 건지...

그렇게 5개월이 지나자, 몸무게가 늘었다. : ) 예상했던 결과다. 빌려온 책중에 1,2 권씩은 대부분을 읽었다. 드라마는 끝판을 깼기에 보는 시간이 줄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인문강좌, 환경과 관련된 다큐 보는 시간은 여전하다. 다만 무지 하기 싫은 일을 할때 좋아하는 영상을 본다. 설거지할 때, 빨래 널때처럼 내가 무의미하게 여기는 활동을 유익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그밖에도 뭔가 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연스레 노트북을 열어 한 땀 한 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명상 시간을 갖는다. 2012년에 내가 작성했던 글을 발견했다. 기록과 명상을 하겠다는 다짐의 메모였다. 하지만 8년동안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실행하게 됐다. 한 번에 시작되는 건 없는 듯 하다. 8년동안 끊임없이 글쓰는 것과 명상을 내 옆에 두고 싶어했다. 결국 한번은 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지 않는 일들을 두고, 그만 다그치기로 했다. 때되면 하겠지...

 

뭔가 배우고 싶은 것도 생겼다. 창직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위한 연구와 상담 할 때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기위한 공부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려니 통장의 잔고가 부족했다. 서른 넘어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있던 일도 줄었는 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던 중- 2달만 할 수 있는 알바가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생겨난 일이었다. 코로나로 일할 기회를 잃은 사람이 많아서 이들을 상담하기위해 생긴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단기간 근무하며 돈을 벌 수 있단 생각으로 지원해, 시작하게 됐다. 그간 나는 하는 일과 직장에 기대하는 바가 꽤 높았다.(아니 높아졌다.) 그러나 다 요구하진 않았다.(아니 처음엔 요구하면 죄 짓는 건 줄 알았다) 서른 넘어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선 기대하는 바가 돈말곤 크게 없다. 일의 의미를 덜어내면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설렌다. dolce far niente ; 달콤한 게으름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한 계절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 살펴봐야겠다. 평온한 오늘을 감사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