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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살이

집을 비울수록 내가 들어난다

O:nle 2021. 1. 4. 18:51

요즘 남편, 아이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 공간이 그만큼 지루해졌지요. 새로운 경험을 집안에서 해보고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했고, 튤립도 심어보았습니다. 아이 방엔 새로운 장난감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거실에 좀더 큰 사이즈의 스마트tv가 들어왔습니다. 이참에 새로운 책장과 책상을 구입해볼까도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애써 구입한 스마트TV는 쉽게 보이지 않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두었습니다. 스마트TV에 탑재된 친절한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능이 탐나서 더 많은 돈을 주고 구입했는데 그 바람에 드라마, 예능, 다큐 등 시리즈 도장깨기하며 정줄을 놓게 되었지요. 티비중독에서 빠져나오기위한 조치였답니다. 

 

근래 하게 된 행동이 내가 머무는 곳을 나와 닮게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루한 공간을 소비로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깔끔한 책장에 책이 줄지어 꽂혀있으면 나다워질까요? 그 안에 있는 나는 만족스러울까요? 사각테이블을 원형으로 바꾸면 보다 나다워질까요? 내 답은 NO! 입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어쩌면 비우는 것이 더 나다울지 모릅니다. 흔히들 말하는 충만한 미니멀리즘. 사실 빈 곳을 보고 가지지 못함에 불편했던 적은 잘 없습니다. 베란다 창고에 정리도 못한채 쌓여있는 물건들이 두통을 만듭니다. 그 근처에는 가기도 싫지요. 작년에도 그랬듯 기부물품을 내놓기로 합니다. 나보다 남에게 더 필요할 수 있는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기부물품으로 내어놓을까 말까 고민하다 다시 쟁여둔 가방들, 살이 쩌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들, 선물 받았으나 쓰이지 못한 물건들. 그렇게 3, 4박스는 손쉽게 나왔지요. 기부하기에는 형색이 좋지 못한 것들은 한 짐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합니다. 사실 여분의 박스가 더 있었다면 더 많이 들어내고 정리했을 겁니다. 

 

'언제나 몸과 마음은 가벼이-' 이것이 내 모토인데, 연말이면 늘 이렇게 정리하는데도 집에 물건이 쌓이고 쌓입니다. 새해에 또다른 결심을 해봅니다. 반복해서 사지만 만족하지 못했던 소비는 멈추려고 합니다. 특히 옷과 화장품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1년동안 옷, 화장품, 신발, 가방을 안사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먹고나니 책 제목 중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습니다.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 1년간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한 뒤, 블로그에 그 과정을 글로 써낸 일본의 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였습니다. 큰 결심이나 한 듯 새해 나의 결심을 엄마에게 얘기했습니다. 옷을 1년간 안사는게 뭐가 어렵냐고 하십니다. 옷을 사야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2~3년도 옷을 안샀다는 우리 엄마. 일본 여성의 경험을 책으로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 엄마는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한 번 해보지뭐! 

 

그렇게 내 집안을 비워내면서 나 다움을 들어내려 합니다. 요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관찰카메라로 유명인들이 사는 집안을 보게 됩니다. 운동과 오락시설까지 모든 것을 완비해놓은 집. 필요한 물품이 한그득입니다. 부럽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전망이 좋은 위치에 너무나 아름답게, 편리하게 집을 꾸며놓고선 눈을 뜨면 그 집을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따로 사무실을 구해 책을 읽고, 따로 운동할 곳을 찾고, 따로 휴식할 곳을 만들어 힐링하고 옵니다. 아마 집은 벙커가 아 아니라 베이스캠프에 가깝나 봅니다. 모험을 떠나기위해 존재하는 근거지이지요. 그렇다면 새해엔 더더욱 집을 비워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