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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살이

제자리걸음이 버거울땐, 땅만보고 걸어봅니다

O:nle 2020. 12. 22. 02:26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문뜩 맘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혼자산다> 프로그램에서 기안84가 56km 완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날, 오이도를 목표로 42km를 달리는 데, 빨간 등대를 앞두고 땅만 보고 걷는 잠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목표점을 정하고 출발선에서 발을 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단 생이 듭니다. 많은 고민과 결심끝에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러나 레이스 시작하기 전과 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과 변함없는 환경을 느낍니다. 이럴때 내가 시작한 레이스가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때가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다시 상기하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라' 또는 '초심을 잃지마'란 조언을 줍니다. 옳은 말이지만 참 힘빠지는 말이지요.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목표점을 보며 발에 힘을 주고 나아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걷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럴때 그냥 걷고 있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혼자산다> 기안84가 달리는 모습 

목표를 설정할 땐 보통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 지 확인하려면 zoom out을 해야만 보이기 때문이죠. 숲을 본 후 목표점을 설정했다면 달리는 순간부턴 zoom in이 필요하다고 느껴 집니다. 왜냐면 멀~리서 내 좌표를 확인해보면사실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 얼마 후에 도착하는 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목표점까지 몇km가 남았는지 반복적으로 확인하다보면 걷는 행위 자체가 고행이 됩니다. 

 

"그때부터 땅만 봤어요. 그냥 가자 가자! 도착을 생각하지 말자. 가다보면 도착해"

목표점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때, 기안84가 했던 말입니다. 땅을 보고 걷는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는 일이며, 목적과 수단이 같아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안84는 이번 도전이 끝나고 4일을 앓아 누었다고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땅만 보고 걷는 것을 넘어 주변을 살피게 되고 걷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봅니다. 그랬다면 출발점에서 목적지로 내 위치를 옮기는 결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여 걷는 자체를 즐기다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실패'로 여기지 않을 겁니다.    

 

사실 지금은 온몸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제가 몸으로 겪어낸 체화된 경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워밍업을 마치고 땅과 내 발끝을 보며 조금씩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제자리걸음이란 생각이 조금씩 듭니다. 그것이 노오력의 배신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한계가 다룸의 대상이라면 아직 나의 한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해서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새해에는 고통과 아픔없이 주변을 보면서 걷되, 세밀하게 제 한계를 컨트롤해보는 경험을 갖고자 합니다. 오늘도 내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