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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자녀의 진로 문제, 주의할 점은?

O:nle 2020. 9. 9. 16:23

"우리 딸, 이번에 고등학생 됐는데 성적은 고만고만하고, 뭘 시켜야할 지 모르겠어요. 적성이나 흥미 있는게 뭐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요. 남에돈 벌어먹기 싶지 않은데, 그런거 얘기해줘도 모르니까... 나중에 고생하지말고, 지금 조금만 노력하면 될 거 같은데... 남들처럼 유학을 보내고 100만원씩 하는 과외를 붙여줄 형편도 안되고, 그렇다고 어디 취직시켜줄 만한 끈도 없어요. 부모가 능력이 없어 애만 잡는 거 같기도 하네요. 상담 좀 해주실래요?"

 

저는 20대 이상의 청년과 중장년을 주로 상담합니다. 그런데 상담을 받는 분들 특히, 어머니들이 가끔 위와 같은 말씀을 하세요. 그럴 때 제가 드리는 조언은 '대신 결정하지 말 것' 그리고 '죄책감갖지말고 응원할 것' 입니다. 쉽게 말하지만 정말 취하기 어려운 태도 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3때 저는 기능대학교로 진학해 요리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4년제 대학은 나와야 앞으로 먹고 산다며 성적에 맞춰 영문과에 진학시키셨어요. 1년 정도 대학 생활하다가 결국 제가 그만뒀습니다. 흥미를 찾을 수 없었거든요. 그동안 집에 있거나 아르바이트를 간간히 하면서 4~5년을 흘려보냈어요. 이제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도 하는데, 전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상담 할 때, 자신의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20대 청년들 중, 과거 부모로인해 열망했던 일이 좌절되거나 포기했던 것을 뒤늦게 꺼내드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론 현재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당시 부모로 인해 좌절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현재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 믿게 됩니다. 4~5년이 지나 요리를 다시 배우게 됐습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훈련에 참여했고 그 자세를 보고 직업훈련기관의 추천으로 일식집에서 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회를 잡지 않습니다. 자격증을 따고나서 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를 대며 기회를 잡지 않습니다. 결국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요리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20살이 된 자녀가 자신의 진로를 계획하고 실행할 때, 부모님은 잠시 물러나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성장해나가길 원한다면, '어른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아직 뭘 모르는 나이라' '사회생활 힘든걸 어떻게 알겠어'하며 부모가 대신 결정내리면, 독립하지 않고 부모 곁에 아이로 머뭅니다. 성인의 나이지만, 자립의 기회를 놓친 청년들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모 때문이었다' 탓하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한채 과거에 머물게 되지요. 

 

불과 10년 전, 현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나요? 부모 또한 자신의 10년 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물며 나와 다른 인격체인 자녀가 10년 후, 20년 후 만족할만한 선택을 부모가 알 수 있을까요? 자녀가 살아갈 세상, 그 모든 것을 부모가 통제할 수 있다면 모를까, 온전히 자녀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죄책감 갖지말고 응원하기.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다보니, 부모의 자원으로 자식을 취업시키는 일들을 주변에서 듣고 보게 되죠? 그러다보니 자식을 취업시키는 것도 부모의 역할로 생각하고, 백수 생활을 오래하는 자녀를 보며 자책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금수저를 자녀의 손에 쥐어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금수저를 쥔 자녀들은 능력 좋은 부모를 만나 운이 트인 걸까요? 아닙니다. 부모로 인해 삶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자립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지요.  

 

"사범대 나왔습니다. 임용은 안붙었는데, 부모님 빽으로 사립 중학교 교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교내에선 이미 제가 낙하산 탄 것을 알고 계시더라요. 그 속에서 위축되고,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보기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수군거리기만 해도 제 얘기갖고, 이 소문이 퍼지면 학생들이 날 선생으로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스트레스가 커져서 그만두고 싶은데, 부모님은 제 평생직장이 될거란 생각으로 무리해 만든 기회라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거든요."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를 하는 나이가 평균 49세, 운좋게 60세까지 일을 한다고 해도 직장을 나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합니다. 60세에 은퇴할 때, 그때도 부모가 대신해 자녀의 인생을 결정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면 '자립의 기회'를 뺏어서는 안됩니다. 위 내담자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스스로 해낼 수 없을 것이란 전제하에 자립의 기회를 뺏었습니다. 20대에 자신의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훈련을 하게 되면, 다음에 새로운 인생길에 접어들때 덜 불안하게 이 시기를 헤쳐나갑니다.  

 

자녀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해 자립하길 원한다면 꼭 '어른 대우' 해주세요. 그리고 온마음으로 응원해주세요. 부모가 믿지 않고 철부지 아이로만 대한다면 아이는 부모의 생각대로 믿을 수 없는 철부지 아이로 곁에 머뭅니다. 뭘 더 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립의 기회) 뺏지만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