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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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

O:nle 2020. 4. 26. 15:10

“팀원들 중에 임신한 사람이 있어서, 저까지 아이를 가지면 팀원들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선배가 갑자기 둘째를 임신 출산하면서 저도 백업하느라 야근 계속 했거든요. 저마저 부담 주기 싫어서 그만둬야하나 고민되요. 그런데 아이 낳고나면 취업도 쉽지 않을 것 가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경력 버리고, 육아랑 병행하기 쉬운 직업으로 바꿔야하는 건지...”

회사에서 면접을 볼때 여성에게 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싱글 여성에게는 “남자친구 있나요?” “결혼 예정인가요?” 결혼한 여성에게는 “아이가 있으세요?” “출산계획이 있으세요?” 와 같은 질문입니다. 제 경험을 빌자면 출산 이후 경력보유여성들의 사회 재진입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제가 받은 질문은 "둘째 가질 계획이 있나요?" “아이한테 급한 일이 생길경우, 돌봐줄 분이 계신가요?” “돌봐줄 가족과 현재 거주지는 얼마나 가깝나요?” 등. 처음 보는 사람과 제 가족계획을 얘기해야하는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 이런 질문을 했다가는 ‘몰상식한’ 인사 담당자란 얘기를 듣습니다. 뿐만아니라 면접장에서 역량평가와 무관한 개인사질문을 할 경우, 고용노동법상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송합니다만’ ‘이런 질문 실례가 되겠지만’ 이란 단서를 붙이고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저러한 질문의 바탕에는 여성은 일을 하는 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 일, 출산과 육아, 집안 일로 일에 집중할 수 없을것이라는 우려. 일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기에 업무에 소홀하거나 쉽게 그만둘 것이라는 오해가 앞서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을 때, ‘남자처럼(임신하지 않은 사람처럼)’ 일하려는 강박을 가졌습니다. 집안일이나 아이에 대한 얘기는 사내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으며, 나의 사적 영역을 일과 연관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임신한 여성과 일하면서 팀이나 회사가 피해 봤단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좋은 선례를 남기려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프로페셔널한 태도라 생각했습니다. 임신하고도 외근이 잦아도 문제없다며 모든 출장에 참여했으며, 어린이집 방학으로 휴가를 써야할 때, 자녀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태도는 지구의 절반인 여성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동료로부터 뺏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유능한 여성과 함께 일하기위해 혁신해야할 회사로 부터 변화할 계기를 잃게 했습니다. 저로 인해 또다른 여성 동료는 배려 받을 기회를 놓치고, 어떨땐 무리하며 일해야 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생긴 후로는 여성의 삶, 엄마의 삶, 임신한 여성의 삶을 동료들과 얘기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일하기위한 방법을 창조합니다. 우리에겐 일하는 엄마, 누나나 언니, 여동생, 일하는 아내, 딸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남성과 다르기때문에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있습니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과 시선이 더 나은 사회와 조직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직장에선 ‘여성성’을 지워야만 프로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남성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면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인데다 심지어 일까지 잘하는 ‘능력자’를 떠올리지만 여성은 일에 소홀한 사람으로 봅니다.

여성에게 일의 의미는?

 

 

대부분의 남성은 가정의 주된 수입을 벌기위해 직장생활을 합니다. 주된 수입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대비 남성이 높은 급여수준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기위해 휴가를 쓰거나 그만둔 여성에 비해 승진의 기회 또한 높습니다. 실제 OECD 주요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크며(평균 14.5% 차이남), 우리나라 여성은 남성보다 37% 정도 임금을 덜 받고 있습니다. (출처 : OECD Employment Outlook 2017) 2018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33%으로 점점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직장은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여성은 '돈'이나 '승진'만을 목표로 일하기엔 직장 내 대우와 급여수준이 현저히 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킹맘으로 일을 지속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과 승진을 뛰어넘는 동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결혼 후 거주지가 직장과 상당히 멀어지면서 출퇴근 시간만 하루 중 4시간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몸이 고되고 힘들지만 저한테 가치있는 일이었기에 직장생활을 유지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근무시간 내 높은 집중력을 유지합니다. 퇴근후나 주말에도 나의 컨디션을 조절해 무리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근무시간에는 다만 1분도 직무와 관계없이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대한민국의 여성 직장인은 퇴사할 수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오해를 거두고 보다 균형잡힌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여성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주된 소득을 버는 남성들은 인생을 재설계하고 싶은 순간에도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만약 내 배우자가, 내 딸이, 내 여형제가 정당한 대우와 소득을 얻으며 일한다면 당신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안정적으로 일과 삶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직장일을 하기에 여성성은 더이상 약점이 아니라 강점입니다. 누군가의 육아휴직으로 나나 내 동료가 아무런 보상없이 과중된 업무를 부담하지 않도록 요구합시다. 결혼과 출산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 외에도 싱글여성이나 남성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상상해 봅시다. 1인가구부터 4인가구 그 이상,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기 좋은 창의적 조직을 만드는 데 책임과 권리를 다 해 봅시다. 

 

 

깊이 생각해보기

1. 책추천 : 여성의 일, 새로고침 / 곽정은 외

2. 관련 글 <육업일치, 육아를 일로 만들다>

3. Why we have too few women leaders /셰릴 샌드버그 TED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