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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진정 일을 하고 싶은 건가요?

O:nle 2023. 11. 27. 16:50

"일을 다시 해보려고요. 그런데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없는 곳이어야 해요. 제가 개를 키우고 있는 데, 산책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어서요. 주말은 가족과 보내야 하고요. 그리고 직장은 집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제가 하는 업무가 종일 실내에만 있다보니 창문이 좀 큰 공간이길 바래요. 그리고 공휴일 쉴 때, 제 연차를 빼지 않는 곳이어야 해요. 부모님과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녀와야해서 연차가 부족하면 안되요. 또 종교를 강요하는 직장은 싫어요. 회의 시작하기전에 예배를 들여다 된다거나... 그런거요. 또 눈치 않보고 육아휴직을 쓸려면 직원 수가 좀 많았음 좋겠어요. 대체인력을 바로 구할만한 그런 곳? 그리고 저는 상담일만 하고 싶은데, 그 밖에 실무를 도와야되면 체력상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그리고 페이는 제 경력을 다 안쳐주더라도 세후 이정도는 보장해줘야 하고요. 또.... "
 
일을 분명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직장을 탐색하고 지원하는 과정을 함께 상담하다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번 생에 찾기 힘든 회사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직접 자기가 사는 곳의 반경 30분 거리 이내에 회사를 설립한다고 해도, 저 조건을 모두 성립시키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상담을 시작합니다. 
 
진정 일하기를 원하십니까? 
 
내담자의 경우, 3달 이내의 빠른 취업을 희망한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 밖에 모든 시그널은 '일을 원치않아!'라고 보내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직장을 구하자마자 '육아휴직'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기업은 근무한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도 육아휴직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컸습니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다만 '일'이 진정 하고 싶은 사람은 대게 휴가 쓸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명확히 거부반응을 보이는 행동입니다. 이동시간 30분 내, 관련 직무로 원하는 페이를 주는 직장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지원서를 넣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수만가지입니다. 이 번달에 아는 지인의 결혼식이 2번 있어서, 자녀의 어린이집 방학이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라,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결국 지원서를 내지 못했지요. 취업을 원하지만 지원서를  넣지 않고, 면접도 보지 않습니다.  
 
다시 기업을 찾고,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일이 하고 싶은 이유가 아니라 '일이 하기 싫은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하기싫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이유도 확인해야했습니다. 
 
일이 아니라 '존재 가치'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나라에서 300만원을 주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 안전한 곳에서 아이를 돌봐준다고 할 때 300만원을 급여로 받습니다. 어떤걸 하시겠어요?" 

 

이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공헌이 목적이 아니라면 월급을 안주는 데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기에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담자의 경우, 집안일을 선택했습니다. 저 질문에 옳은 답은 없습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버는 월급을 모두 가족돌봄과 회사를 오가는 교통비에 쏟아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일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제가 원하던 것이니까요. 또 지금은 다른 답을 골랐습니다. 집안일을 선택하고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요. 문제는 머리로 '일'을 선택했는데 몸이 '집안일'을 원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모순이 일어나는 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아주 포악한 말이 있습니다. 일을 신성시하고 생산성을 중요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집안일, 육아에 대한 노동의 가치는 크~~다고 얘기들 하지만 '돈'으로 보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시대에 노동을 하고 있는데 돈이 나오지 않으니 생산성이 없다고 느낍니다. 생산성이 떨어진 사람에 가치를 두지 못하는 것, 그것이 내담자가 일을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겁니다. 일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장하지 못한체 뒤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 불안감이 취업을 원한다는 믿음을 만들었지요.  

 

한 편,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꽤 만족스럽습니다. 당장 돈이 부족해서 못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절약하면 외벌이도 괜찮은 형편입니다. 그래서 일을 조금더 미루고 싶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있습니다. 실제 사람들에게 '일'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일하다'라는 동사에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람이기에 한 가지 마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세 가지 마음이 양립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내담자가 갖고 있는 또 다른 마음이 있었습니다. '실수하는 내 모습'을 볼까봐 두려운 것. 내담자가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저와 상담을 시작한 순간부터 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원한다고 했던 업무를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갑갑해지고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공간에 자신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려운 마음이 크고, 상상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지원할 일이 아이돌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일상속에서 아이돌을 만난겁니다. 그 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어떤 준비를 마치고 이 일을 하게 됐을까?' '하는 일 중 어려움은 무엇일까?' '신인의 경우 수익은 얼마나 될까?'등등 수많은 질문이 떠오르고 호기심이 생길겁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앞서고 불안했습니다. 현재의 삶을 바꿔나가기에 에너지가 충분치 못한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사회로 복귀했고. 이제 나 혼자 남았다'는 말에서 느껴지듯 뒤쳐지지 않으려는 불안감이 취업 상담을 하게 만든 겁니다. 일을 원하지 않지만 일을 해야만되겠다고 생각하니 앉지도 서지도 못한 체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티게 되었지요. 마음도 몸도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장 취업을 목표로 한 상담은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일상에 에너지를 높여줄 활동을 늘리고, 다양한 일을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교정하였지요. 

 

저 또한 일을 하면서 오만가지 마음이 들어찹니다. 상담하는 게 보람되고 좋다가도 어느 때는 내담자를 받기 싫어집니다. '내 미래에 대한 불안도 통제하기 힘든데, 타인의 진로를 상담할때야?'라는 말이 제 마음으로 들려오지요. 그럴때는 별 수 없는 것 같아요. 하기 싫은 마음도, 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인정해주는 수밖에요. 그리고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