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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가방을 직접 싸야하는 이유

O:nle 2023. 10. 4. 17:20

초등학교 1학년, 가방싸기는 저의 몫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오면 가방을 획! 던져넣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가방 한 번 열어보지 않았지요. 어떨때는 가방을 학교에 두고 집에 쫄랑 쫄랑 걸어옵니다. 그럴때마다 제가 어릴 때 들었던 레퍼토리를 저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아들, 군인이 전쟁나가면서 총을 아무데나 던져놓고 다닐까? 공부하는 학생이 책가방이 어딧는 지 모르고 돌아다니면 어떻게해? 빨리 학교가서 찾아와." 

 

아~ 이 래퍼토리를 제가 들을 때 '나는 전쟁안나간다고~' 하며 씰죽거렸던게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 말을 저 또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도 저 또한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제가 챙겨주지 않으면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울테니, 일단은 챙겨주고 2학년부터 스스로하게 하자고 생각했는데 2학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들의 가방은 쓰레기통마냥 그날 먹은 간식과 종이접기나 만들기하고 남은 재료가 수북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전달해야할 서류들을 제때 제출하지 않아 고대로~ 들고 다닙니다. 열이 납니다. 

 

"야! 이제 엄마는 니 가방 안 챙겨줄거야. 학교 다녀오면 필통 정리도 하고, 다음날 챙겨야할 준비물이나 숙제들. 니가 직접 챙겨. 물통도 부엌에 꺼내놓지 않으면 물 안 넣어줄거야. 알아서 해!"  

 

이렇게 화를 내고나면 잠시 몇일만이라도 스스로 책가방을 챙기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아들은 제 예상을 벗어납니다. 일주일치 방과후 교제와 준비물을 가방에 다 밀어넣습니다.

 

"이렇게 다 넣어놓으면 가방 따로 안 챙겨도 되지? 난 매일 매일 가방 챙기기 싫어. 뾰족한 연필보다 뭉툭한 연필로 글쓰는 게 좋으니까 연필도 안 깎을꺼야. 그리고 숙제는 학교에서 할게. 그럼 됐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터질듯하게 커진 가방을 메고 등교합니다. 제 속도 터질듯 합니다만 스스로 느껴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까 싶어 가만히 두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자기 가방이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뭐든 다 들어있어 너무 좋았다고 해맑게 얘기합니다.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다시 아들의 가방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책과 준비물을 빼고 연필을 깎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늘 가던 도서관이 아니라 다른 도서관을 아들과 함께 걸어가게 됐습니다. 거리는 비슷한 데 아들은 힘이 드는 지 계속 물었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해? 어디로 더 갈껀데? 이제 몇분이나 더 걸어? 도서관에 도착해서 아들과 정수기 물을 뽑아 먹으며 얘길 나눴습니다. 

 

"아들, 늘 가던 도서관이랑 이곳의 거리가 크게 차이 안난다! 근데 여기 오는 게 더 힘들지 않았어? 왜 그런지 알아? 엄마는 가는 길을 알고 있고 넌 모르거든. 엄마 손 잡고, 따라만 왔잖아. 그래서 얼마나 더 걸어야하는 지 알고 싶고 어디로 가는 지 계속 질문했지? 알고 가는 거랑 모르게 가는 게 이렇게 차이 난다! 어떨때는 모르는 길이라 즐거울 수도 있는데, 그게 길어지면 지치고 버거울 때가 있어. 니 몸도 마음도 준비가 안됐거든. 책가방을 스스로 싸야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가방을 싸면서 니 몸과 마음을 준비시키는 거야. 내일 니가 어떤 수업을 들을 지, 한 번 생각하고 가는 것과 그냥 학교가서 그때 그때 준비하는 건 엄청난 차이가 나. 학생은 가방을 싸면서 내일을 준비하고, 직장인은 잠들기전 어떤 일을 마무리 짓고, 어떤 일을 시작해야하는 지 잠시 생각하면서 내일을 준비해. 지금 당장은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 

 

지금은 몸으로도 머리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니꺼니까 스스로 챙겨!' 소리지리며 가방챙기라고 할 때 보단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긴 명절 연휴가 지났습니다. 등교를 앞둔 전날, 아들은 스스로 책가방을 챙겼습니다. 알림장을 꺼내 숙제할 내용을 확인합니다. 내일 무슨 요일인지 묻더니 줄넘기를 주섬 주섬 가방에 넣습니다. 폭풍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준비과정을 지켜보며 도움을 줬습니다. 조금씩 성장하는 아들을 보니 너무나 기특합니다. 

 

가끔 아들에게 묻곤 합니다. "넌 언제커서 스스로 할래?" 그럼 아들은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때가 되면 하겠지~" 사실 그게 정답입니다. 때가 되니 걷기 시작했고, 때가 되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되니 밥을 혼자 먹고, 때가 되니 옷을 스스로 입습니다. 이제 가방을 스스로 쌀 때가 왔나봅니다. 때로는 조급한 엄마때문에 아들이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이 믿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결국엔 스스로 해 낼거라는 것을. 못하면... 아직 때가 아닌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