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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엄마, 오늘 친구한테 맞았어"

O:nle 2023. 5. 26. 04:35

언제부턴가 친구가 때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어느날 아들의 얼굴이 친구가 꼬집어 손톱자국이 나고 벌겋게 열이 올라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등을 내려쳤다고 합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심각한 폭력은 아닐꺼라 생각했지요. 온 힘을 다해 때린게 아니라 그냥 시늉을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다음엔 하지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해!"하며 가볍게 흘려듣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학부모에게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한 학부모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은 심각했다고 합니다. 속이 아픕니다. 소중한 내 아이를 누군가가 함부로 한다는 건 너무나 속상한 일입니다.

순간 생각이 많아집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과 함께 얽혀 삽니다. 그 사이에는 언제나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럴때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하고, 그 상황을 버텨낼 내면의 힘도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용기도 있어야합니다. 이것은 어른이 되는 순간 뿅!하고 생기는 걸까요? 사실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문제 해결 능력이 길뤄집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뒤에서 지켜봐줘야 하고, 어떤 부분은 부모가 직접 개입해 도움을 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 두가지를 잘 구분해 내는 것이 양육자의 역할이자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가 친구를 만들어주고, 친구와의 갈등도 부모가 나서 풀어주면 아이가 사회적 능력을 향상시킬 기회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부모에게 의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아이에게만 맞겨두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심했습니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을 무엇이 될까? 아이가 학교에 있는 모습을 cctv로 보고있는 것도 아닌데, 그 상황을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읽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담임 선생님께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이러 저러한 일이 있었고, 현재 부모로서 드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엄마,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았으나 도움을 얻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안일하게 생각했고,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에 힘든 상황을 썼으나 지나쳤습니다. 아들은 학교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도하고 나름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행동했습니다. 결국 그 친구에게 직접 사과를 받았고,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미안했고 기특했습니다. 친구한테 맞고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엄마인 나는 대응방법을 정확히 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마도 아이에겐 ‘니가 잘못이야’라고 들렸겠지요. 얼마나 외로웠을 까. 미안함이 커집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나야말로 옳은 대응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너도 똑같이 때려' '크게 소리 질렀어야지' '선생님한테 바로 얘기했어?' '걔랑 놀지마~'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거나 아예 관계를 단절하란 얘기를 주로 합니다. 저도 아이가 유치원 때 해본 적 있던 멘트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나도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친구를 때리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못하겠어.“라고 답했었죠. 사실 그게 옳은 것이죠. 친구를 때리는 게 쉬은 게 그릇된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더라도 당한만큼 갚아주는 일이 쉬웠다면 이미 하고도 남았겠죠. 아들의 성정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친구를 때리는 게 쉬운 네 친구가 잘못된 거야. 표현법이 틀렸어. 그건 잘못한거야. 사람을 때리는 건 어떤 경우에도 용납이 되지 않아. 고의로 한게 아니어도, 장난이어도 잘못된거야. 우리 아들, 학교에서 너무 힘들었겠다. 엄마가 도울 방법을 찾아볼게. 같이 해결해보자. 너무 걱정하지마.“  

입장바꿔 생각해봤을 때, 제가 듣고 싶은 말입니다. 아마 아들도 저런 말을 기대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아들에게 사과를 하게 됩니다.

“아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잘못을 저질렀어. 아들이 친구때문에 힘들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그런데 건우는 내면의 힘이 진짜 센거 같아.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더라. 용기 있고 대단했어. 지금처럼 엄마나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못 알아들어도 포기하지말고 자신을 지키기위해 노력해야 돼. 건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건우여야해. 알았지? 엄마가 진짜 미안해.”

이번일로 제 나름의 기준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런 일이 또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말입니다. 육체,언어 폭력을 반복적으로 가했거나, 다수가 공격하는 경우,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짐작될 때,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어린 초등학생는 부모의 도움과 가르침이 절실합니다. 도움을 주는 방법은 담임과의 상의가 우선입니다. ‘어떻게 해달라!’ 하는 강제적 요구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방법을 함께 찾아가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세밀하게 살펴주어야 아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갈등이 해결되고나면 자연스럽게 학업을 잇고 학급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업무 처리하는 행정가나 상대방에게 말을 전달하는 비서, 또는 무능한 월급쟁이로 전락시키면 아이를 도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내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또 한 사람입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학급 아이들 전체의 성장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도울 때, 가장 중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갈등이 빚어졌을 때 이를 극복 못할 상처로 남기는 게 아니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이 되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겪는 갈등 중 대부분은 어른들의 지혜가 모이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건들 입니다. 그런데 이 갈등을 어른이 키워 '받은 만큼 응징'하는 데 집중해 버리면 가해자, 피해자로 낙인찍힌 아이들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습니다. '내 아이가 당한 만큼 벌하겠다!' 혹은 '상대방 아이의 잘잘못도 명백히 밝혀내겠다!'는 자세는 두 아이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지탄하지 않을 것! '니가 만만하게 구니까 애들이 그러는 거야~' '걔랑 어울리지말라니까 왜 또 같이 놀고 그래!'와 같은 말들. 이미 상처 받은 아이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피해를 입은 아이가 자신을 탓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폭력이 비사회적인 행동임을 판단할 수 있게 가르치려면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잘못을 물어선 안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간과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에게 '친구를 니 뜻대로 바꿀 순 없어. 그러니까 니가 바뀌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던게 후회됐습니다. 제가 깨달은 교훈이라 해도 사회적 윤리를 배워나가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었습니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로 상담을 할 때 보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빌미를 제공한 게 아닌 지' 고민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해자들이 더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을, 더 나아가 청년을 그렇게 길뤄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올래길을 여성 혼자 늦은 시간에 걸었습니다. 그러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랍게도 '왜 늦은 시간 여자 혼자 돌아다녔냐'는 의견이 나옵니다. 젊은 청년들이 할로윈파티를 즐기기위해 이태원을 놀러갔습니다. 거기서 큰 사고가 있었지요. 그랬을 때 '왜 사람 많은 곳을 위험하게 찾아갔냐'는 의견이 소수지만 있습니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겐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야할 의무가 저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