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학교에서는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을 배우고 성장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협력이라는 것도 배우고, 때론 경쟁을 하기도합니다. 학급내 작은 규칙부터 범사회적 규율까지 다양한 것을 체득합니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배움이 큽니다. 저희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평균 20명이 한 학급으로 구성됩니다. 나와 다른 19명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을 익히는게 가장 큰 공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들은 1학년때 만난 새 친구들 사이에서 겪는 어려움을 얘기할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친구들과 놀이하는 게 순탄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때론 서운하거나 불쾌했던 순간을 종종 얘기하지요. 하지만 학습에 대한 스트레스, 어려움을 얘기한 적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전달한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니 '시간 내 문제를 푸는 능력'이 부족해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교육만으로도 아이들이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배운 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있어야 학습이 완성됩니다. 나아가 더 깊이 있게, 더 다양한 부분을 학습하려면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부분을 익히고 싶을 때, 사교육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은 1학년때 무엇을 배웠는 지 저와 얘기나누며 복습하는 시간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규칙적이기 어려웠습니다. 때를 놓치고 그냥 넘길때가 많았지요. 이렇게 이따금 질문하고, 대답하는 5~10분의 시간만으로도 평균의 학업능력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되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봅니다. 조금더 규칙적으로 자신이 배운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을 돕기위해 엄마표 학습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학습 퍼실리테이터가 되기로 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엄마이기에 갖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원리를 알려주거나 틀린 부분을 알려줄 때, 아들은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서운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줄 때도 너 이렇게 찡얼거리면서 수업에 참여하니?"라고 물었더니 그러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찜찜하게 아들의 학교 숙제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아들이 제 곁에 와 하는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엄마, 나 역사책 읽고 왔는데 단군왕검이 제사장인데... (생략) 나 수학은 못하지만 역사는 잘 하지? 그치? 나 방청소도 오늘 했어. 기특하지?"
아직 어린 아들은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앞섭니다. 충분히 사랑받고있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주지만, 자신을 낳아준 모체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엄마와 공부하는 동안은 계속 '틀린 것'을 지적받게 되자 자신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순간 공부방을 차려 자녀와 학생을 함께 가르쳤던 여성과 상담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방을 운영하기로 결심한 데는 자녀가 제일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녀를 직접 돌보고 돈도 버는 게 공부방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엄마와 선생님역할을 같이 병행했습니다. 어느날부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답니다. 엄마가 공부방에서 내준 숙제를 집에서 하는 데, 아이들이 여전히 공부방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지요. 그때 엄마와 선생님, 이 둘 중 하나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체할 수 있지만 엄마는 대체할 수 없지요. 아이들에게 온전히 엄마가 되어주기로 마음먹고 공부방에서 더이상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엄마와 선생님, 이 두가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는 부모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어려움이 있을 지 저또한 조금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학습을 도와주기 전, 아들에게 쪽지를 써서 보여줬습니다.
건우야. 너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야. 엄마 그거 알고 있어. 그런데 요즘 '시간내' '실수하지 않고' 문제 푸는 것이 어렵잖아. 사실 그게 수학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 엄마는. 시간내, 실수 없이 푸는 건 컴퓨터가 더 잘해서 인간이 이길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애. 그치만 요즘 수학시간 끝나고도 쉬는시간까지 문제 풀어야되는 게 싫잖아. 그건 똑똑한 사람이 잘 하는 게 아니라, 연습을 해 본 사람이 잘해. 그리고 공부도 요령이 있어. 무조건 긴 시간 공부하는게 효과적이진 않아. 그래서 엄마가 도와주려는 거야. 엄마보다 더 훌륭한 방법을 아는 사람도 많아. 근데 아직은 건우가 배우는 것들은 엄마가 알려줄 수 있어. 엄마가 널 도울 수 있게 해줘.
'틀렸어'라는 말은 방금 니가 푼 문제가 틀렸단 뜻이지. 건우 자체가 가치없고 틀린 사람이란 게 아니야. 건우가 100개 틀려도 넌 여전히 가치있는 사람이고, 엄마는 널 사랑해. 엄마가 가진 노하우를 건우꺼로 가져갈려면 태도를 바꿔야해.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돼. 우리 한 번 힘을 모아 잘해보자! 화이팅!
쪽지를 읽고도 여전히 엄마가 말하는 '틀렸어' '다시 해보자'에 억울함을 느끼고, 생떼를 피운다면? 어쩔도리가 없습니다. 사교육이 필요한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가르치고, 사랑하는 일에 열중하고 학습은 전문가에게 맡겨야될 듯 합니다. 사랑과 돌봄은 부모에게, 학업지도는 선생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