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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엄마말은 거절하기 쉬워도 친구말은 힘들어

O:nle 2022. 11. 29. 12:26

건우는 늘 친구가 원하는 방식으로 놀려고 합니다. 무엇(what)을 하는 가? 보다 누구(who)와 어떻게(how) 하는 가?가 중요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친구가 좋아하는 놀이를 함께 해주려고 하지요. 대신 그 놀이를 하는 방식을 아들이 주도해서 만들어 냅니다. 그런 모습은 유치원때도 보였습니다. 아들이 어몽어스 캐릭터를 좋아할 시기였는데 어몽어스 놀이를 술래잡기처럼 만들어 반 아이들과 모두 같이 놀더군요. 그 놀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제 아들 뿐이죠. 그러다보니 친구들이 와서 규칙의 룰을 묻습니다. 그럼 필요할때마다 친구와 룰을 만들어 내더군요. 자신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노는 겁니다.  

 

어느 날 장을 보고 집을 가는 길 건널목에서 붕어빵 가게를 보았습니다. 제가 붕어빵을 사먹으로 가자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평소 국화빵이나 붕어빵을 아들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안가겠다고 거절하고 빨리 집에 가자더군요.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지나가는 친구가 붕어빵 사먹으러 가자고 아들에게 청했습니다. 그러자 "좋아!"하고 손살같이 뛰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모를 배신감이 들었지요. 붕어빵을 행복하게 먹는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야! 너 엄마가 붕어빵 먹자고 할때는 싫다 그래놓고 왜 친구가 가자고 하니까 가냐? 엄마보다 친구가 더 소중해? 완전 실망이야~ (삐짐)" 

 

그랬더니 아들이 우문현답을 합니다. 

 

"엄마는 언제나 날 위해서 권하는 거잖아. 나 좋으라고. 그런데 나한테 좋은 게 아니니까 거절하는 게 좀 쉬워. 그런데 친구는 자기가 원하는 걸 나한테 하자고 해. 예를들면 자기집까지 데려다달라고 하거나 뭐 그런거? 그러면 친구가 원하는 일이니까 거절하기 어려워. 그리고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어. 나쁘지 않아. 근데 친구한테 해주면 친구가 진짜 고마워해. 그래서 그래. 나는 엄마를 더 사랑해." 

 

아들과 붕어빵이 먹고 싶으면 "엄마는 붕어빵이 먹고 싶어, 같이 가 줄래?"라고 물었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면 엄마를 위해 기꺼이 아들은 붕어빵을 먹으러 가거나, 또 거절을 하겠지요. 그리고 이어서 물었습니다. 

 

"친구가 원하는 걸 너한테 말했는데 넌 그걸 하기 싫은 적 없어? 그럴땐 어떻게 해?" 

 

"거의 없어. 나한테도 재미있는 일이거나 뭐... 별로 상관없는 것들이야." 

 

"그래도 건우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싫은거는 거절할 주 알아야 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고 나면 괜히 그걸 요청한 친구가 미워지고 사이도 나빠진다. 그냥 건우가 거절했으면 그 친구와 다른 방식으로 재미나게 놀 수 있거든. 친구가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그 친구도 니가 엄청나게 짜증나고 힘든데 참고 해주길 원치 않아."

 

"알았어 엄마, 나도 좋고 친구도 좋은 걸 찾아서 같이 할게." 

 

저 대화를 나누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들이 제 말을 거절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다행이라는 것 입니다. 엄마가 기대하는 대답이 있고 대답에 따라 자신이 사랑받거나 사랑받지 못할까봐 걱정하지 않는 듯 합니다. 저 또한 제가 원하는 일을 하기위해 부모의 동의나 지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았기에 후회가 적고, 제 삶을 책임지려 노력했었죠. 아들도 앞으로 제가 무엇을 요청하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 다행이라 생각했지요. 

 

두 번째는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거절을 못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쉽게 부탁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제가 무언가 요청을 받았을 때 그 부담감이 엄청났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없이 스스로 해내려고 했지요.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됐고 '함께 감당하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거절도 할 주 알아야한다는 걸 느꼈지요. (느끼는 것과 그걸 잘 해내는 건 다르더라구요ㅠ) 

 

제가 어릴 때, 근처에 사는 친구가 같이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가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친구는 늘 재시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 집을 나서고도 늘 지각해 선생님께 혼이 나거나, 아슬아슬 불안하게 등교했지요. 만나기로 ♪한 지점에 늘 그 친구는 없었기에 그 친구 집까지 제가 찾아가야했고 등교를 도왔습니다. 거절하는 것보다 가슴앓이를 하는 게 더 쉽게 느껴진 저는 싫은 소리 한 번 못했습니다. "앞으론 각자 알아서 등교하자!"라고 말한마디 했으면 그 친구가 약속을 지키기위해 노력했거나 아님 따로 등교하며 아침을 즐겁게 맞이했을 겁니다. 그때는 친구가 좋아 나를 먼저 배려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결국 이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 그 친구와 인연은 끊게 됐지요. 이번 기회에 아들에게 '거절'이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래서 ♪지가난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