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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로봇할꺼야 or 사람할꺼야?

O:nle 2022. 11. 29. 13:57

#1.아들 방에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발 딪을 틈이 없어집니다. 저는 아들 방을 정리해주지 않습니다. 세탁한 옷을 아이 옷장에 넣어두기위해 방에 종종 가지만, 그 밖에 아들 방을 잘 가지 않지요. 갈때마다 정리안되고 너저분한 방을 지나오면 기분이 찜찜합니다. 하지만 내 방이 아니니 그대로 둡니다. 그러다 더이상 아이 방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엉망이 되고 나서 열폭 합니다. 쓰레기 종량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제 생각에 쓰레기(?)로 추정되는 것들을 왕창 버립니다. 알뜰한(?) 아들은 장난감 포장지나 상자들도 방에 다 쟁여둡니다. 이런 것들이 싹 사라지고 나니 방이 깨끗해 집니다. 학교를 다녀온 아들은 깔끔해진 자신의 방을 보고 처음엔 좋아합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 불안해합니다. 뭐가 사라졌는 지를 제일 먼저 찾지요. 그리고 저한테 달려와 장난감 어딪냐고 칭얼거립니다. 물론 대부분의 것들은 사라진지도 모릅니다.  
 
#2. 아침에 1분 1초가 바쁜데, 옷이 바시락거리는 게 싫다느니, 양말이 불편하다느니, 단추가 있는 바지는 입고 벗기 불편하다느니 찡얼거립니다. 또 열폭합니다. 아침에 밥먹고 등교하기도 빠듯한 시간인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생각도 없고 느릿느릿 옷을 입으며 짜증을 부립니다. 그럴 땐 진짜 콕"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래도 하루를 시작하는 데 고개 푹 숙이고 등원하는 뒷모습은 보기 싫어, 화를 참아냅니다.   
 
#3. 학교에서 일주일에 2번 일기쓰기 숙제를 내어 줍니다. 아들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숙제입니다. 그런데 그것마져 하기 싫다고 찡얼거립니다. 어떤 주제로 써야할 지 모르겠다고 해서 주제를 던져주면 그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럼 알아서 쓰라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투덜거리죠. "모르겠으면 엄마가 하라는 거 써!"라고 저도 음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차곡 차곡 쌓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직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들에게 찬찬히 설명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엄마가 너를 로봇으로 대하길 바래? 아님 사람으로 대해주길 바래? 로봇은 절대 스스로 하지 않아. 대신에 명령어를 주입하면, 명령어에 맞는 일을 해내지. 근데 사람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스스로 해내. 그래서 명령어를 집어 넣지 않아도 돼. 건우는 엄마가 일기써라! 방치워라! 옷챙겨입어라! 양치해라! 명령해야만 움직이더라. 로봇인가봐. 그런데 로봇이 짜증내는 거 봤어? 스스로 못하니까 엄마가 시키면 그냥 해야지 왜 짜증을 부리지?"
 
"난 로봇이 아니야. 사람이라고. 내가 알아서 할껀데 엄마가 명령하면 너무 짜증나서 싫어! 그래서 하려던것도 나중에 하고 싶어져!" 
 
"니가 스스로 생각해내지 못하니까 처음엔 엄마가 힌트를 주는거야. 학교 가방 챙겼니? 옷 입었니? 방정리 안하니? 하고 묻잖아. 로봇이 되기 싫으면 그때 가방을 챙기고, 숙제를 하고, 양지하면 되는데 그때도 건우는 안하잖아. 시간 지나서 엄마가 소리 높여서 빨리 일기써!!하고 명령을 할때 움직이잖아. 그건 스스로를 로봇으로 만드는 일이야. 근데 건우는 사람이잖아. 니가 해야할 일을 책임지지않으면 언제나 누군가가 개입하게 돼 있어. 엄마도 니 인생에 개입하는 거 싫어. 내 인생 살아야지~"
 
"그냥 다 안하면 안돼? 하기 싫고 귀찮으니까 안하는 건데, 엄마가 시키잖아. 나는 방청소 안해도 되고, 옷정리 가방정리 안하고 싶어."
 
"사람이 태어나면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해. 근데 아기는 할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가 전부 대신 해준거야. 근데 건우가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잖아. 너에게 능력이 생길때마다 엄마는 하나씩 돌려주는 거야. 밥을 못 떠먹을 땐 엄마가 숫가락으로 떠먹이지만 지금은 건우 스스로 먹지? 엄마가 떠 먹여줄때는 엄마가 주는대로 먹어야돼. 싫어도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그땐 골고루 다 먹였지. 근데 지금은 건우가 스스로 먹으니까 먹기 싫은건 너 안 먹잖아. 그지? 스스로를 책임질때만 자유가 생겨. 방청소 스스로 안하니까 엄마가 하게 되지? 그럼 더이상 건우방이 아니야. 엄마가 버려도 된다고 판단되면 버릴꺼야. 이해돼? 그동안 엄마가 옷이며 가방이며 다 챙겨줬는데 이제 스스로 하라고 하면, '그동안 엄마가 맡아 도와주셔서서 감사합니다~' 하고, 앞으로는 스스로 하는 대신에 자유를 얻는 거야."  
 
마지못해 아들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달라고, 스스로 하겠다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지금도 명령어를 넣어야만 움직이는 아들입니다. 당연하지요. 인생 8년차니까요. 다 큰 어른들도 직장에서 로봇으로 일하기도 하는데요. 명령어를 넣어도 작동하지 않는 어른도 있지요. 저 또한 마찬가집니다. 아침에 눈뜨면 '운동하자!' 스스로 다짐하지만, 한 발도 걷지 않는 저를 보면 할말이 없습니다. 이럴 때 어른들은 로봇처럼 대해달라고 헬스 트레이너에 돈을 주기도 합니다. 돈을 주고 자유를 반납한 체, 주입된 명령어대로 움직이며 뿌듯함을 느끼지요.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래도 우리 아들은 요즘 스스로 외투를 정리하고, 책가방을 챙기고, 물통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지요. 그런 아들을 보며 저 또한 오늘은 밖에 나가 걸어보려 합니다.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