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친구 00은 돌잡이로 돈을 잡았대.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이라는데 내 생각엔 그 친구가 종이접기를 잘하거든. 그 친구는 돈으로도 미니카 접을 수 있어. 돈도 종이니까 종이접기를 잘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근데 나는 돌잡이할 때 뭐 잡았어?"
"ㅋㅋㅋ 네말도 맞다! 돈도 종이니까, 종이접기 잘하는 이유가 있었네~ 건우는 문서 꾸러미랑 연필 잡았어. 문서에는 지혜와 행복이 적혀 있었고 연필은 학습력을 뜻하는 거야."
"아~ 그래서 내가 창의적이고 행복하구나~ 근데 나는 학습하는 거 별로 안좋아하는 데, 그래서 학원도 안가고 집에서도 게임만 하잖아."
"학습력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야. 건우는 게임하면서도 배우잖아. 만화영화 보면서도 배우고,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배우고, 수업에서도 배우고. 어디서든 배우잖아. 그래서 학습력이 높고, 지혜롭고 행복한 삶이 될거란거 아닐까?"
"맞네. 나는 마임크레프트 하면서도 배우고, 슈퍼마리오하면서도 배우네. 엄마 말이 많네~"
학교에서 아이들과 돌잡이에 대한 얘기를 나눴나봅니다. 건우가 돌잔치에 대해 묻자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코로나가 없었지만 가족들과 점심 식사 나누며 가볍게 마무리 했습니다. 일명 '3무3유 돌잔치'라고 이름을 붙이고 가족들을 초대했는데요. 3가지 없는 것은 전문MC가 없었고, 부모의 직장동료나 친구가 없었습니다. 세번째는 축의금이었죠. 그리고 3가지 있는 것은 엄마MC, 가족들의 재능기부, 축복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건우는 그날 가족들에게 축복의 말을 한 마디씩 들었지요. 그리고 저의 조카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축의금을 챙겨주신 분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소소하지만 기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당시 첫 돌까지 무탈하게 커준 아이 덕분에 감사하단 생각이 컸습니다. 2.1kg의 미숙아로 세상에 조금 일찍 나와야했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돌잔치 얘기를 꺼내줘 그 당시 저의 다짐이 떠올랐습니다. 큰 문제 없이 기고, 걷고, 옹알이하고 나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아들을 보며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랬을 겁니다. 아들이 앞으로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라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건우라고 지었지요. 그리고 아이가 행복하길 기원했습니다. 나의 욕심이 눈을 가려 아이의 불행을 못보는 일 없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학교갈 나이가 되어가고 주변 아이들을 글을 읽고 쓰기 시작하자 초조함이 찾아옵니다. 주변 어른들도 "이제 한글 읽고 써?"하고 물어 볼때마다 '내가 너무 풀어놓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게 됐지요. 이 밖에도 아들이 입학을 앞둔 7살때 다양한 말을 듣게 됩니다.
'학교가기 전 젓가락을 쓸 주 알아야된다는 데, 혼자서 해?'
'영어유치원 안보냈는 데 어학원은 따로 안보낼꺼야?'
'요즘 애들이 영상만 많이봐서 문해력이 떨어진대. 교재 매일 하지?'
'어릴 때 체력을 길뤄둬야 중고등학생 때 안지치고 공부한다는데, 운동 안가르쳐?'
'요즘 선행 안하는 애들이 어딨어, 담임도 학원에서 공부시키라고 한다던데...'
'(다른 아이를 보며)쟤는 학원 안가고 맨날 놀이터에서 놀더라고. 엄마가 집에 있다던데 관리안하나봐~'
학원 안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를 보고, 학부모들이 '부모가 관리 안하는 아이'로 얘기하더군요. 우리 아들도 놀이터에 가면 집에 올 생각을 안하는데,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점에가서 ebs 문제집을 2권 샀습니다. 갑자기 엄마와 학습을 시작하게 된 아들은 엉엉 울어야 했지요. 하기 싫으니까요. 공부하기 싫다며 우는 모습이 귀여워 당시 영상을 찍었습니다. 1년이 지나 다시 그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아들은 1학년 교과 과정을 무리없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젓가락질도 잘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재미나게 읽고요. 영어는 아직 흥미가 없다만 큰 지장 없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학교가는 일을 누구보다 즐거워합니다. (당시 샀던 예비초등학생을 위한 문제집은 딱 한번 펴보고 먼지가 쌓였지요.ㅠ)
아이는 자기속도로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엄마인 저의 불안을 해결하려고 아이를 잠시 힘들게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수차례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때마다 내가 아들에게 요청하는 것이, 내가 감당하지 못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겠습니다. 아들의 돌잔치가 있던 날, 저는 아들의 행복만을 바랐습니다. 돌잡이를 할 때 남들이 잡는 걸 잡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부모 생각에 좋아보이는 걸 잡으라고 설득하지 않았죠. 건우가 집어올린 것을 보고 축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나누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다짐을 다시금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