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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겨울은 필연적이다

O:nle 2022. 11. 28. 11:43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하고,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존에 최악의 조건은 '고독'이라 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강제 종료를 선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직장내관계 등에서 일어납니다. 요즘 손절이라고도 표현하지요. 부부로 살다가 이혼을 할 수도 있고,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살 수도 있고, 절친이었으나 더 이상 소통하지 않을 수 있고, 직장동료로 인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본능과 반대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결되어 생존에 유리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연결로 생존에 불리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부모지만 나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받고 싶은 자녀는 늘 부모 옆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손절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합니다. 단절을 선택하는 것이죠.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데 주변의 평가로 좌절를 반복한다면 아마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겁니다. 반복해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이 퇴사를 결심하는 것이죠. 친구와의 관계에서 공감을 얻고 싶은 데 이용당한다는 느낌을 받아 친구관계를 정리합니다. 누군가와 단절하는 게 그 순간, 그 사람이 생각해낸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그렇다면 단절의 원인은 비난하는 부모,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 이용해먹은 친구에게 있을까요? 저는 그동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손절을 해야할 때면 지혜롭지 못한 부모를 만났고, 무능한 상사를 만났고, 나랑 안맞는 친구를 만난게 원인이라고.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단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고. 그래서 화나고 슬픈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른 시선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문제였습니다. 내 안에 열등감이 건드려졌거나 에너지가 고갈됐거나 다양한 이유로 평소처럼 같은 주파수를 맞추지 못했고, 구태여 주파수를 맞추고 싶지 않은 '나의 의지'였지요.

동전을 던졌을 때 언제나 한 쪽면만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언제나 한 사람이 손절만 할 순 없지요. 어떤 관계에선 단절을 당하는 쪽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가 나와 인연을 끊고 숨어버릴 수 있고, 동업한 동료가 나와 같이 일 못하겠다고 떠날 수 있고, 친구가 급발진으로 화를 내고 관계를 정리할 수 있고, 배우자가 따로 살자며 이혼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럴때 손절을 당한 쪽이 문제일까요? 앞에서 말했듯이 단절을 선택한 사람의 몫입니다. 그때 내가 할 일을 '수용'입니다. 이 또한 '나의 의지'입니다. 수용한다면 의미있는 배움을 얻고, 수용하지 않으면 상처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모에게 존재 자체로 사랑 받길 원하는 A씨는 부모와 단절하고 살았습니다. A씨의 욕망과 부모가 원하는 사람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부모 앞에 서면 늘 작아졌지요.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사랑받지 못할바에 내 멋대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삐딱선을 탑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죄책감이 쌓이지요. 그 죄책감을 씻어내는 방법은 부모를 나쁜 사람으로 모는 겁니다. 부모 탓으로 관계를 잘라내는 것 밖에 없었다고 말하지요. 시작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나쁜 부모'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단절시킨 결과를 만들었지요. 결국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선택은 A씨 안에 받아들이지 못한 욕망이었습니다. A씨의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수용할 경우, 엄청난 성찰이 일어날겁니다. 반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장 깊은 상처가 됩니다.

이렇듯 사람은 언제나 일렁이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일렁이는 욕구가 속한 시점에 따라 인간관계는 4계절을 맞이합니다. 내가 인간관계를 정돈할 때,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낼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욕구를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의 관계를 정돈할 때, 내 잘못을 집어낼게 아니라 상대방의 욕구에 변화가 찾아온 걸 수용하는 겁니다. 이로서 서로의 역할이 완성된 것이지요. 이처럼 인간관계에 주체성을 갖고 책임질 때 건강한 순환이 일어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관계가 생장기의 여름이길 바래야할까요?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이지요. 요즘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겨울 정원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나무잎도 꽃도 다 시들고 푸른 생기도 사라졌습니다. 자연은 모든 것을 떨어뜨려 땅을 덮습니다. 겨울은 소멸과 정지의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지요. 이를 통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생명력을 잉태하게 됩니다. 겨울로 졸업을 맞은 인연은 곧 새 인연과의 봄을 준비합니다. 요즘들어 겨울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