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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을 놓아주기로 했다

O:nle 2022. 5. 24. 14:01

꽤 오랫동안 나의 으뜸가치는 자립이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키워주던 어린시절을 벗어나 어른이되면 자립을 우선가치로 놓아야한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드렸습니다. 지금도 이것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가 늘 문제입니다. 나에게 '자립'의 가치가 지나치게 커져있단 생각이 불연듯 들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감정입니다. 내 분노방아쇠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의존적인 사람'을 볼 때,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의존적인 사람을 만나면 도우려고 했습니다. 직업을 갖게 해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정서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지요. 

 

왜 그 일에 내 사명을 느끼고, 나는 자립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걸까요? 나에게 자립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 소중한 사람을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립을 하지못해 나 또는 타인에게 불합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분노버튼이 여지없이 눌러졌습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해소했을 까? 생각해보니, 억압했습니다. 유년시절 몇가지 경험속에서 감정을 들어내는 것을 '악'이라고 여겼지요. 그래서 당당하게 부모 등골을 빼먹는 동생을 볼때면 불편했고, 돈버는 일 외에 모든걸 엄마에게 맡기는 아빠가 불편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친구와 나눠 책임지려거나 이유막론하고 자신의 업무를 끝맺지 못하는 동료를 비난했습니다. 당시엔 이런 감정조차 느끼려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은 죄책감이 들고 그간 친분을 쌓아온 동료나 친구에게 드는 부정적 마음은 내가 가진 연대를 깨트릴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억압된 감정의 에너지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냅니다. 결혼을 하고도 원가족에서 분리가 안되는 배우자, 아들에게 분리불안을 느끼는 시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 또한 '자립'에 대한 집착이 저만큼이나 큽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린 아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와 저는 꽤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처럼 불편한 현실이 나타나자, 제 감정이 커다란 파도로 일렁입니다. 그 감정이 처음엔 분노로 왔습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내 감정이 터지고, 내 노력이 헛되었단 생각에 억울합니다. 그 감정은 비난으로 바뀝니다. 피해자모드를 켜고, 건강하게 자립하지 못하는 가족을 보며 마음으로 비난했습니다. 세번째는 지각이 일어납니다. 이 일에 매몰돼, 하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살펴보게 됐습니다. 생각이 끊이지 않으면서 파국화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그것들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반성이 시작됩니다. 원인을 수용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다섯번째는 감사입니다. 내가 가둬논 감정에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도와준 이번 기회를 감사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몇줄 안되는 감정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감정의 변화를 6개월에 걸쳐 모습을 바꾸고, 흘러가게 했습니다. 

 

이제 제 주변 사람들을 연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도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었지요. '자립'뒤에 숨겨 나 자신을 증명해내려 애썼던 것, 증명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것으로 제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어떠한 감정이 들었다'는 것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사실'이니까요. 자립에 가졌던 집착을 덜어내니 앞으로 내가 가져야할 가치가 선명해졌습니다. 그것은 연민과 솔직함입니다. 이 또한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합니다. 나에게 자유와 성장과 나눔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결핍에서 탄생한 가치있지는 조금더 지켜봐야 합니다. 이것을 갈구하는 제 마음이 또다른 결핍을 끌어당기더라도 잘 대접해 보내주려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가치가 제 삶에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