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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실수를 반복하는 나, 한심합니다" (실패에 관하여 1편)

O:nle 2022. 4. 25. 16:06

"저는 금융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수학과를 전공으로 했고, 지인들 사이에서 저는 꼼꼼하고 실수가 적은 사람으로 통해요. 그런데 일하면서 실수가 잦습니다. 신입사원일때는 배우는 단계라, 실수가 조금은 허용이되지만 저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아요. 익숙해질만도한데 계속해 실수가 납니다. 상사에게 주의를 받는 것이 무서운 건 아닙니다. 몇사람들이 불편해지면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데도 저 스스로에게 짜증나고 화가납니다. 그 순간 제가 구제불능처럼 느껴져요. 그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고 나니, 오늘은 또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까. 스스로를 못믿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 실수를 발견하면,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라는 생각과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 일을 계속하다간 자존감이 바닥칠 거 같아요." 
 
일을 하다보면 이불킥을 하게될 일이 종종 생깁니다. 저 또한 그러합니다. 실수가 반복적으로 생기니 제가 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명확히 아는 것을 얘기할때도 자신감이 부족해서 의견 내는 게 두렵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회의시간에 말없이 있거나, 업무담당자를 정할 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아주 가끔은 직장에서 실수하던 그 당시를 꿈꾸기도 합니다. '실수하는 나'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떨땐 이직(회피)을 생각해보기도 했고, 때로는 상황 탓이나 남탓으로 돌려보기도 했습니다. 그 조차도 스스로가 보잘것 없고, 성숙되지 못하단 생각이 들어 또다시 자책 노선을 탔지요. 
 
그런 제가 조금씩 위로를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내담자와 대화를 나눌때 입니다. 식품회사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만두 70개를 주문한 적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mc를 보다가 예상 밖의 일이 생겨 자신이 해야할 일이 뭔지 하얗게 생각이 나질 않아 그대로 행사장에서 도망간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교사는 어린 제자가 하는 말에 자격지심으로, 공격하는 말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실수로 복지 대상자를 누락시킨 바람에 몇달간 지원비를 받지 못한 사람이 생기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책의 사람들이 실수하고,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의 실수담을 들으며 기분이 홀가분해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는 당연한 말을 조금이나마 받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살펴보자
내담자들이 자신의 실수로 고뇌할 때, 더 한 실수담으로 잠시 그들의 생각고리를 끊어낼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명쾌한 결과를 내진 못하지요. 그래서 실수를 했을 때, 생기는 마음의 회로, 감정의 변화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실수 했단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린 순간, 우리 대부분은 불편한 1차적 정서가 떠오릅니다. 원초적으로 느끼는 반응으로 두려움이나, 창피하고 수치스러움 등이 있을 수 있죠. '이 사실을 알리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뒤로하고 2차적 정서로 순식간에 넘어갑니다. 2차적 정서에서는 1차에서 내가 느낀 정서를 숨기고 내가 감당하기 편한 감정으로 바꾸어 표현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제 잘못인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다른 문제들을 찾습니다. 환경탓, 남탓을 해봅니다. 결국 내탓이 아니란 생각에 '화'라는 감정을 표현하지요. 하지만 결국 내 잘 못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걸 압니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만약 내가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이미 지나간 일을 붙들고 집까지 갑니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질 못하지요. 어떤 때는 '자책'의 감정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도구정서라고 하는데, 상대에게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내기위해 표출하는 감정입니다. 머리로 계산한 건 아니지만, 동료들 앞에서 격하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괜찮다'는 위로를 이끌어내지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자 
사람인지라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마음먹은대로 조율할 순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 당장, 어제의 실수를 뒤로하고 일을 지속해야합니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끌어내리는 생각과 부정적 감정의 파도에 압도되지 않고 헤엄쳐 나와야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알아차리기'입니다. 외며하지 않고 느껴야 할 1차적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감정을 내가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수치심을 느끼고 있구나' '반복해 실수한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구나' '실수=한심한 인간이란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기를 시작하면 나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의연하게 관찰할 수 있지요. 이것만으로도 과거의 실수를 현재까기 끌고와 얽매이지 않고, 보다 고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명상에서 이를 '마음챙김명상'이라고 합니다. 또는 '메타인지', '상위인지'란 말로 이 효과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다 이해해야만 가능한 행위는 아닙니다. 저 또한 이 이것을 명확히 알고 있진 못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변화하는 모습, 그 마음이 일으키는 행동을 관찰하다보니 생각고리를 끊어내고 감정과 함께 흘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알아차리기훈련은 1차 정서를 2차 정서로 가리지 않고, 그대로 소화시켜 잘 돌려보내는 효과를 보입니다. 컵에 물이 있습니다. 설탕이 떠올랐는데, 이것을 깨닫기 전에 2차정서로 포장해버렸습니다. 수저로 열심히 저어도 설탕이 녹지 않고, 계속 겉돌기만 합니다. 2차 정서인 포장지를 알아차리고, 그 안에 1차 정서인 설탕을 알아차리면 물속으로 녹아 사라집니다.   
 
누구나 실수 없이 높은 성과를 내는 일잘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실수 자체를 없앨 순 없습니다. 실수가 일어날 때, 휘몰아치는 생각과 감정을 잘 다스리고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이 결국 일잘러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간관계에 무뎌지고, 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에 몸과 정신의 상태을 면밀히 깨닫는 것입니다. 실수와 후회가 없는 삶은 나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실수와 반성으로 단단해진 사람이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