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무리와 무리하지 않는 선의 경계는? 본문

책-임자(이 책의 임자는?)

무리와 무리하지 않는 선의 경계는?

O:nle 2020. 12. 15. 13:48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뱁새는 가랑이를 찢어야 황새만큼 갈 수 있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늘 제 자신이 뱁새라 생각했기에 무리를 해야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서 배웠습니다. '무리'는 언제나 '고통'과 '아픔'이 동반된다고 배웠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이 없으면 불안하다고도 합니다. 예를들어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리나인 강수진은 아침에 눈을 떠 몸이 아프질 않으면 반성하며 하루를 시작다했고 합니다. 최고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무리'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위대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열정'이란 이름으로 남김없이 나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자기계발로 나를 다그치고, 노력하지 않는 나를 때때로 미워했습니다. 내 게으름과 산만함 때문에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여겼습니다.
 
무리했던 경험은 '나 이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며 나의 한계치를 높였습니다. 때론 그 경험으로 '이만큼 해봤이니, 이제 더는 안할랜다' 두 손 들기도 했지요. 두 가지 결론을 갖게해준 '무리한 경험'은 저에게 소중합니다. 그 결과로 '지속하기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건강하게!' 라는 모호한 기준이 생겼습니다. 말그대로 모호한 기준이라 늘 혼돈스러웠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늘 하던데로 그게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국 안주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거나, 한계를 넘지 않는 나를 불편해 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발견하게 된 책 한수희 작가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전에 <온전히 나답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맞아, 내가 삶과 접속하는 싶은 태도는 바로 이거야'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번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책을 읽으며, 나에게 모호했던 기준선이 보다 선명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나는 늘 더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도 될 것 같을 때 멈춘다. 어떤 이는 더 뛸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바퀴를 더 뛰어야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려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작가는 건강해지기위해서만 뛰거나 걷지 않았습니다. 살을 빼기위해서만 산책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서만 태어난 것은 아니므로'라는 글도 있습니다.^^ 걷고 달리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기뻐했습니다. 결국 '무리하지 않는 선'은 내일의 나를 끌어다 쓰지 않고, 오늘의 나로 충분히 만족하고 즐길만한 여유가 필요해보였습니다. 그렇게 꾸준하다보면 어느새 고통과 아픔 없이도 뱁새 자신만의 속도로 황새따윈 처다보지 않고, 멋지게 걷거나 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가지, 책을 읽으며 느낀것은 뭔가 대단한 경험만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란 생각을 놓게 했습니다. 직장을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가장 아쉬운 부분은 직장때문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직장 때문에 하게 되는 다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이 때론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실 노력하면 지금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는데, 내 본능은 썩 원치 않는 모양입니다. 내담자를 만나는 일 외에 따로 사람을 찾지않고 집에만 있으니까요. 그런 내가 답답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몸에 난 3개의 점,  맥시팬 티 구입한 일, 고무 장화 한켤레, 집에서 만난 그리마와 거미를 보고 좋은 글을 만들어 냅니다. 솔직하고, 담백한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그런 그녀가 멋져보입니다.
 
치열하게 일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파괴한다 느껴진다면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나를 다스리기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새해를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고통과 아픔없이하는 제자리걸음도 계속하다보면 근력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이책의 임자는 바로 저였습니다. 
 
'한계'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다룸의 대상이 된다. 한계가 극복이 아닌 다룸의 대상이라는 말은 한계를 수동적이고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계가 다룸의 대상이 될 때, 사람은 무리하지 않으면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만큼이나 한계도 다르다는 사실이고, 각자가 그 한계를 아는 것이 자기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는 점이다. - 엄기호 <공부 공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