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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3년째 승진을 못했습니다 나가란 소린가요?"

O:nle 2020. 12. 4. 15:48

"3년째 승진이 안됐어요. 이건 징계 먹은 거 아닌가요? 뭘 잘못한 것도 없어요. 평균이상의 성과도 냈고요. 요즘은 회사 나가는게 시위하는 것 마냥 스트레스네요.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아내야겠단 생각으로 버티고 있긴한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과거 한 공무원이 20년 가까이 진급 누락으로 상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폭력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 사람이 한 조직에서 20년 가까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승진은 성취감으로 나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자기효능감을 느끼는 일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승진을 못하면 내가 속한 그룹에서 인정, 수용 받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안그래도 하기 힘든 일이 더더욱 싫어집니다.

감정노선을 보자면 첫번째, '화'가 납니다. 화의 밑바탕에는 '불공평'이 존재하지요. 평가제도에 대한 불만이 생깁니다. 그리고 시작점이 달랐단 생각도 듭니다. '끌어주는 상사'도 없습니다. 운이 나빠 실적이 잘 나오지 않는 지역으로 발령이 났죠. 덕을 볼만한 후배나 외주업체도 없었습니다. 권한도 없는데, 결과에 책임지라는 것이 억울합니다.

두번째는 좌절입니다. 화를 내며 나를 옹호하려 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대게 자책을 합니다.
'내가 이 일에 안맞는걸까?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처음 승진하지 못했을 때 너무 아닐하게 행동했어. 내 잘못이지 뭐.' 그렇게 자존감이 깎이는 걸 느끼지만 막상 퇴사나 이직을 과감하게 택하지 못합니다. 여기서도 좋은 평가 못받는데 내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겁도 나지요.

세번째는 합리화입니다. '승진에 목매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연연하지 않겠다. 열심히도 하지 않을거고 적당히 하면서 월급받고, 이직 준비하지뭐.' 이런 생각에 종착합니다. 그렇게 '적당히, 안짤릴만큼 일하기'를 통해 불공평을 상쇄하려 애씁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페어 교수가 한 실험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공평, 정의, 신뢰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너졌을 때 힘이 닿는 한에서 '복수'하려 합니다. 때로는 개인의 금전적이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입니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종종 선택하는 복수 방식입니다. 이것이 '게으름'의 정체입니다.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이상헌>

'열심히 일하지 않기'로 복수를 하면 깎여나간 나의 자존감이 보상될까요? 소속그룹에게 인정받지 못한단 생각과 자기효능감이 떨어지는 것을 떨쳐낼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어렵습니다. 아침에 눈떠 출근길이 괴롭고 동료들과 일하는 것이 불편하고, 다시 '화'라는 감정에 휩싸이고, '좌절'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감정의 고리를 끊고 평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욕심은 빼고 야망은 더합니다.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승진 못해 괴로운 분들은 본인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셔야합니다. 욕심이 없다면 마음이 괴로울 리 없습니다. 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을 겁니다. 일로 배우고 익히고 자신을 표현하며 살 수 없었으므로 평가에 집착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일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평가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일어납니다. '나는 내년에 100% 승진 못해도 상관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했다 얻게되는 괴로움도 감수하겠다'라고 마음 먹었다면 일단 그 일을 지속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적어도 괴로움을 받아들이지못해 '강제 게으름'으로 회사와 본인 모두에게 손해나는 일은 멈추시길 바랍니다.

욕심을 덜어냈다면 야망을 채워봅니다. 가끔 야망과 욕심을 유의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과 야망은 다릅니다. 한 사람의 야망은 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졸로 수차례 승진을 못한 어떤 기술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내 일을 하겠다'는 야망으로 새로운 회사를 차립니다. 연매출 100억이 넘는 회사로 성장시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지요. 그는 대학을 나오지 못해 승진제도에서 매번 밀려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야간대학을 다녔지요. 하지만 뒤늦게 대학간 것을 회사에선 인정해주지 않았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회사를 바꿔보려 했지만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음엔 본인에게 유리한 새로운 판을 만듭니다. 창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의 행보가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욕심을 덜고 야망을 채웠을 때, 더 나은 결과가 찾아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야망은 원하는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분노-좌절-합리화하지 않습니다. 만약 '승진하기'를 야망으로 품었다면 올해 승진 못한 이유를 연구하고, 승진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꾸준히 실행합니다. 하지만 '올해 승진 안해줬으니, 내년엔 시켜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또 욕심만 갖고 있다면 승진을 해도 순수하게 만족하지 못합니다. 동료보다 3년이나 늦게 승진했으니 그간 손해(?)본게 얼만지 따지게 되죠.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음에도 끝끝내 승진할 수 없었다면 어떡할까요? 승진을 위한 노력으로 분명 얻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간의 학습과 깨달음으로 또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겠죠.

결국 욕심으로 승진을 바라면 승진을 하건 하지않건 마음에 앙금이 남습니다. 그러나 야망으로 승진을 바라면 승진을 하지않아도 괴롭지 않고, 승진을 하게되면 성취감을 얻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요.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은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성과지표의 배신>란 책을 보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도 타인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타인을 정확히 평가하는 능력이 없으며 인재를 심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만 가지 시스템은 저마다 모순을 가집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타인에게 평가, 인정받으려는 '승진하기'를 야망으로 품는 일이 없으시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족할만한 성과지표를 만들고, 한해를 마무리할땐 그 지표에 맞춰 본인 스스로 심사과정을 거쳐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