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일은 언제부터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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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언제부터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을까?

O:nle 2020. 8. 5. 20:00

고대에는 생산을 위해 하는 일은 천대시 했습니다. 그랬던 노동의 가치가 근대서부터 지금까지 아주 신성시 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언제부터 일이 삶에서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을 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의 의문에 해답을 준 책 ‘노동가치’(박영균)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을 때, 저는 삶과 일이 하나가 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하는 나’는 꽤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겼지만 일을 하지 못하거나, 나의 선택으로 일을 하지 않을 때 마저 나의 주가가 바닥을 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일을 할 때보다 일을 안할 때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했습니다. 소득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육아휴직을 쓰고 고용노동부에서 급여를 지원해 줄때도 저는 스스로를 가치 있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삶의 근간을 오직 ‘일’에 두고 있었습니다. 일이 잘 되면 하루가 기쁘고, 일이 잘 안풀리면 하루가 우울했습니다. 일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던 모양입니다.

일을 이토록 신성시하는 나의 생각은 온전히 저의 생각인지, 아니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비판없이 흡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일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 지 궁금했습니다.

“고대의 노동은 ‘육체적인 활동’으로 언제나 ‘정신적인 활동’보다 처차적인 것으로 평가되며 가치 있는 활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동이 존재론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생각은 근대 이전에는 유폐된 사고였다.“ (노동가치 책안에)

노동이 인간의 삶에서 핵심으로 등장한 것은 1)르네상스와 2)종교개혁, 3)산업혁명 때문이라고 합니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인간의 활동을 가치있는 것으로 정립하였습니다. 참고로 르네상스는 중세 신학에 벗어나 인간의 욕망과 감정 정서를 재발견하고자 했던 정신적 혁신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인간중심주의가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종교개혁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직업을 연결시키는 직업소명설을 통해 일을 삶의 핵심가치로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근면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준 재능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부의 축척과 노동을 하나님의 영광을 섬기는 거룩한 행위로 바꾸어놓았다고 합니다.

끝으로 산업혁명으로 생산이 확대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깁니다. 잉여생산물을 교환하면서 시장이 생기고, 시장의 확대는 수송수단발달, 유통을 확장시킵니다. 그 결과 시장은 더더욱 확대되다보니 봉건제를 해체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어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고 근대부터 ‘노동이 가치를 생산한다’ ‘노동이 가치있다’는 사고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일을 존귀하게 여기고, 일을 통해 나의 효용가치를 느끼고, 잠재력을 높이려 하는 것. 이것은 변화하는 인류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습니다. 이같이 개인주의, 인간중심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일의 의미는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하나의 창구가 되야한다고 여겨집니다. 먹고사니즘에서 덕업일치로 그 비중이 커지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나에게 있어 '일'은?

저 질문에 바로 답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정반대에 있는 의미를 살펴보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삶의 본질을 찾으려할 때, 정반대에 있는 ‘죽음’을 생각해봅니다. 죽음으로 삶의 유한성을 강조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지 알아내기위해 일하지 않는 것, 백수인 나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습니다.

백수인 나를 볼품 없고,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며 실수하거나 실패할 때 좌절감이 매우 컸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게 겁납니다. 물론 일로 인해 칭찬받고 성과가 날 때 잠시 즐겁고 성장하는 기분에 만족감도 큽니다. 그러나 일을 하는 과정은 고통, 괴로움, 자존감이 낮아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지속됩니다.


결국 ‘일하지 않는 나’에 의미를 두지 못하면 행과 불행을 반복하며 속시끄러울 일이 지속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멈추려면 ‘나’ 존재 자체를 인정해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생각의 전환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로 인해’ 가치있게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집니다. 생산성이 높지 않은 날에도 나를 혐오하거나 미워하는 비율이 줄었습니다. 이제 일의 의미를 덜어내려고 노력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의 비중이 높아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나답게 살아가며 생산하는 것들이 나를 넘어 타인에게도 가치가 생긴다면, 나에 걸맞는 ‘직업’을 갖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 외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도- 자유로이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길 희망해봅니다. 이 책은 노동가치를 '형벌'처럼 여기고 있는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내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