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책-임자] 중년의 교환일기, 그리고 우정 본문

책-임자(이 책의 임자는?)

[책-임자] 중년의 교환일기, 그리고 우정

O:nle 2020. 4. 12. 14:15

초등학생 때, 친한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는 것이 유행했던 적 있습니다. 저도 가장 친한 친구와 교환일기를 꾸준히 한적 있지요. 초등학교때 시작된 교환일기는 고등학교까지도 뜨문 뜨문 이어졌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기장은 제가 가진 감정의 찌꺼지를 정리하고, 위로받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교환일기를 주고 받을 만큼 가까운 친구가 있다는 것에 나름 작은 소속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썼던 교환일기의 룰은 이랬습니다. 일주일간 각자의 일기장에 기억에 남는 순간,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썼어요. 그리고 뒷 면이나 옆 면은 비워두었죠. 일주일 후 만나서 일기장을 바꿨어요. 각자가 일주일간 기록한 내용을 읽고 비워진 옆면에 글을 남겨줬어요. 엄마에게 혼난 후 상심한 마음을 "괜찮아" 해주기도 하고, 중간고사를 잘봐서 평균이 올랐을 때 "축하해"하고 함께 기뻐해 주었죠. 좋아하는 노래가사나 글귀를 써 넣어 공유하기도 하고, 친구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선물처럼 붙여두기도 했었죠. 그렇게 독자가 단 두명인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 안에서 가장 솔직한 목소리를 내보고, 불안감을 덜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교환일기가 나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지 몰랐습니다. 지금와 보니, 요즘 말하는 '힐링'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우리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삶을 풍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끊임없는 성찰과 힐링의 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 교환일기를 다시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입니다. 이 책의 임자는 어린시절 교환일기를 주고 받던 친구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이자 딸, 아내,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는 일상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여전히 주고 받습니다. 같이 꾸준히 성장해왔기에 지금껏 그 우정을 이어온 듯 합니다. 그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축하하길 원합니다.

 

글 중 '나 다운 삶'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나 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반대방법이 낫다고 봐.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왜냐,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해서야. ‘하기 싫은것/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둘 멀리하다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가 절로 선명해져. 더 나아가, 직감적으로 '아, 싫다'라고 느끼면 나를 그들로부터 격리해주는 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임경선 작가가 쓴 내용인데요. 직감적으로 나를 사랑하기위해 하는 선택에 확신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할 때, 너 다운 삶을 살기위한 행동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제는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그 친구가 낯설게 느껴질때가 있었습니다. 그건 그 친구와 멀어졌고, 우리 사이가 예전같지 않다는 나쁜 시그널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존재에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당연히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거라고 보는 거야. 나는 그렇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때로는 서로에게 낯설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 이상으로 '각자의 개체로 흩어질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그러면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성숙해지고, 서로가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아.」

 

더 독립적이고, 성숙해지고, 서로가 더 잘 보이도록 중년의 교환일기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들이 지나치고 마음에 남았는지 물어볼 요량입니다. 과거 교환일기를 써봤던 친구나,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깨달음을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