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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자를 선택하는 이유 본문

내-일의 고민

조용한 퇴사자를 선택하는 이유

O:nle 2024. 8. 20. 11:41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는 직원들이 더 이상 적극적으로 일에 참여하지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자이들펠린이 쏟아 올린 17초 영상이  세계 각국의 ‘조용한 퇴사자’들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영상 속 짧은 문구는 ‘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 입니다. 더불어 일이 곧  삶이 아님을 얘기합니다.

 

최근 이호건 작가가 쓴 ‘조용한 퇴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 또한 밀레니얼세대로 직장에서 또는 직장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MZ세대를 커리어상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조용한 퇴사’에 대한 저만의 고찰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현실적으로 mz세대가 퇴준생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직장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 이런 유형을 ‘불만 회피형’이라고 명명하기로 하자. 이들은 현재 직장에 대한 무언가의 불만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는 유형이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회사 내부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겠지만, mz세대의 독특한 성격이 한 몫 거든 측면도 있다. … 첫째, 조직이 개인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낄 때. 둘째 현실이 원하던 이상과 다를 때. 셋째,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을 때. 한마디로 조직생활이 부조리하다고 느낄 때 이직을 고민한다. 

중요한 포인트는 강자(능력자)일수록 고민은 짧고 결단은 빠르다는 사실이다. 조직생활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꼈다 하더라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결단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을 갖춘 mz세대에게는 선택지가 무수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불만이 과감한 독립선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기성세대의 눈에 좋게 보일 리 만무하다. 너무 성급하고 즉흥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는 선배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떠나면 다시 볼 사람이 아니니까.]  도서 '조용한 퇴사' 내용 발췌  

 

책의 일부분 입니다. 퇴준생, 그리고 결단을 내지 못했으나 ‘조용한 퇴사’의 상태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mz의 특징처럼 설명된 부분에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사실 ‘조용한 퇴사’라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비슷한 개념은 있었습니다. mz세대가 아니어도, x세대, 그리고 제 1,2차 베이비부머 중에도 월급루팡으로 불리던 ‘조용한 퇴사자’들이 있었지요. 연공서열제에 따라 높은 급여를 받고 있으나 조직을 벗어나면 그만큼의 수입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사람들. 그들은 변화나 혁신보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문제없이’ 일하고자 합니다. 차이점은 mz세대들이 개인시간이나 자율성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과거의 월급루팡에게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급여가 그리 크지 않았고, 정규직 일자리가 풍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근무하면서 월급루팡은 늘어나기 마련이었죠.  하물며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고, 다양한 직업을 갖게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신의 역량을 높이기위해  개인적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율성이 적은 직장에서 최소한으로 일하는 mz세대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생각됩니다. 어쩌면 에너지를 잘 안배해서 쓰는 워라블(Work-Life Blending)을 잘 실천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강자일수록 퇴사의 결단이 빠르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려웠습니다. 실제 내담자로 만나는 mz세대는 생계를 걸고 퇴사를 결심합니다. 구직활동 기간이 길어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크고, 노동시장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인식한 순간에도 빠른 퇴사를 결심합니다. 계속해 출근을 했다간 피폐해지는 자신을 지키기 힘들어 내리는 결정입니다. 

 

“개인회생을 신청해서 지금 빚을 갚고 있는 중입니다. 이 회사에서 근무하게 된 큰 이유는 급여가 다른 곳에 비해 높았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면 제가 사이드잡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하며 업무를 마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총괄매니저의 횡포가 너무 심했어요. 환승이직이 맘처럼 되지 않아 못그만두고 있었는데, 정신과 약까지 먹으며 일하고 있는 저를 보고 일단 퇴사부터 했습니다. 저를 살려야 했거든요.” 

 

“학교 졸업 후, 임용을 3년간 준비했는데 결국 안됐어요. 결국 중소기업에 취업하기로 진로 목표를 바꿨어요. 늦은 나이에 첫 직장을 구해 입사 했습니다. 첫 사수가 저보다 나이가 적었어요. 나이가 문제가 됐던 건 아니에요. 신입이란 이유로 사무실의 허드렛일 전부를 하도록 압박했어요. 어느 날은 논의할 사항이 있어 회의실에 같이 들어갔는데 면전에 대고 전자담배를 피는데… 경황이 없어 그 순간 아무말도 못했어요. 그런 일들이 반복됐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결국 한 달만에 그만뒀습니다.”    

 

노동시장의 강자라서 빠르게 퇴사를 결심하는 청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실제 스펙이 훌륭한 강자들도 퇴사를 앞두고는 상당히 오래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조용한 퇴사’를 결힘한 사람들이 결코 약자이거나 대안이 없어서 일을 지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딜가나 부조리한 상황과 불합리한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과 조직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진 사람들이 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퇴사와 반대되는 의미의 단어가 있습니다. ‘허슬 컬쳐’는 개인의 생활보다 일을 중시하고 일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놀랍게도 ‘조용한 퇴사’를 선택했다가 생계 위협까지 느끼며 결국 이른 퇴사를 선택했던 MZ세대에겐 ‘허슬컬쳐’모드로 일을 해 본 경험도 있습니다. 늘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만 일하던 사람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대의 특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조용한 퇴사’상태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허슬컬쳐’에 맞게 살아본 경험 또한 갖고 있습니다. 월급루팡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겠지요. 우리 대부분은 조용한 퇴사상태와 허슬컬쳐, 2가지 모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순간, 우리는 각각의 모드를 설정하게 될까요? 

 

‘무엇을’ 보다 ‘어떻게’ 일 하는 지 중요

 

“지자체 사업에 참여했었어요. 처음에 근무했던 곳은 기업이었고, 똑같은 일을 협동조합에 이직해서 했습니다. 업무는 똑같았어요. 급여도 거의 차이 안나요. 그런데 협동조합에서 정말 즐겁게 일했던 거 같애요. 처음엔 협동조합에 대해 별 생각없었어요. 그냥 똑같은 직장이겠거니… 했는데, 들어가서 놀랐어요. 누구하나 뭐라하는 사람이 없는데 일을 알아서 하더라고요. 그 전 직장에서 일할때 불필하다 생각되는 일이 있어도 그냥 하라면 했어요. 그리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느껴도 말 안했어요. 말해봤자 일만 많아지고, 좋아할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직한 곳에선 ‘나’를 위해 성과를 내는 기분이 들었어요. 가감없이 더 나은 방법을 찾기위해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어 즐겁게 일했던 거 같아요.” 

 

정말 ‘똑~같은 업무’를 각기 다른 기관에서 근무 해봤던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이 분은 한 기업에 취업한지  일주일만에 ‘조용한 퇴사자’ 모드로 전환해 일하게 됐다고 합니다. 결국 1년 후 퇴사를 하고 다른 조직에서 같은 직함을 갖고 일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 차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두 조직이 보인 가장 큰 차이는 일을 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한 조직에서는 ‘진짜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근무 시간동안 하는 회의, 그리고 준비하는 작업들, 외부 미팅업무 등등. 모두 실질적으로 필요한 업무라 생각됐기에 거부감 없이 주어진 업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업무 중 개선 여지가 있는 것들은 동료들과 공개적인 자리에서 회의하며 수시로 바꿔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업무를 이행하는 방법도 같이 만들어가면서 성과를 만들어 갔습니다. 

 

반대로 한 조직은 ‘보여주기식 일’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고 합니다. 영양가 없는, 혹은 내담자 생각에 가치 없는 일을 위해 ‘애’를 써야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고 합니다. 하다못해 ‘회의’하는 모습도 보여주기식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팀원, 또는 고용주에게 리더쉽을 보여주기위해  회의를 추진하고  의미없는 말들을 주고 받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대부분 삼삼오오 불평과 뒷말을 늘어놓게 됐다고 합니다. 

 

노동자가 조용한 퇴사와 허슬컬쳐 모드을 선택하는 기준. 아마 대부분은 ‘어떤 일’을 하는 지가 중요할 것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적성에 맞는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것이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개인적 동기와 조직의 동기가 명확히 맞아떨어져도 그 일을 진행하는 방식,  ‘어떻게’가 미치는 영향이 컸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실질적 효과를 내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해냅니다. ‘조용한 퇴사자’를 줄이기위해서 기업에서는 진짜 일 경험을 설계해야 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주어진 조건 내에서 ‘진짜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