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커리어 계발과 자기착취는 엄연히 다릅니다 본문

내-일의 고민

커리어 계발과 자기착취는 엄연히 다릅니다

O:nle 2024. 4. 24. 17:27

"방과후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학교안에서 일하다보니 학교 행정사무일을 보시는 선생님들을 자주 접하게 됐는데, 그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방과후교사는 근무시간이 짧다보니 급여가 적어요. 정규 수업이 끝난 다음, 오후에 시작되다보니 분명 일을 하고 있는 데 집에서 '직업'으로 인정을 안해주는 듯 해요.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행정직은 취업이 어렵고,  대학교 계약직 일을 풀타임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교수별 연구 사업비로 운영하는 프로젝트 행정업무를 맡았습니다. 담당 교수가 누구냐에 따라 근무조건이 많이 다르긴 해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일이 정~말 많았어요. 토, 일요일 나가서 일하는 건 당연했고요. 매일같이 야근하다보니 몸이 버티질 못하더라고요. 코피 쏟고, 병원가 수액 맞아가며 일을 했던 거 같아요. 1년 채우고 결국 그만뒀어요. 계약을 연장해서 또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주셨지만, 포기했어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해야할 때, 또는 전직으로 경력과 무관한 일을 처음으로 해야할 때, 또는 경력과 관계가 있지만 5년 이상 휴직 후 다시 커리어를 이어나갈 때. 대부분 급여나 노동조건을 우선으로 고려하기 힘듭니다. 일경험을 얻는 대신, 대부분을 포기하고 임금노동을 하지요. 진로 상담을 할 때 저 또한 얻고자 하는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할 순간이 있다고 첫 번째로 말씀드립니다. 목표를 이루기위해 첫 번째로 넘겨야 할 도미노 블럭을 위해 '한 가지'에 에너지를 쏟도록 하는 것이죠. 그 다음엔 양갈래, 세갈래의 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때부터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선후의 문제입니다. 결국 어떤 길이든 그 목적은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진로 설계를 돕습니다. 

윤여정 배우가 최근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며 인터뷰 했던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감독 하나만 봤다"고 말합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딨어.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역할이 나한테 와. 하나만 봐야되는 거야."

55년이 넘게 연기를 해왔으며 한국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을 탄 베테랑 연기자가 한 말입니다. 하물며 처음으로 일의 경험을 쌓아가야하는 데 급여가 많고 근무 시간은 적고, 정년을 보장하며, 성장의 기회를 무궁히 제공하고, 복지 혜택이 훌륭한 그런 일자리가 굴러 들어 올까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커리에서 첫 길을 터야하는 순간, '일 경험' 그 한가지를 보고 기업이나 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력이 있었으나 단절된 경우라면 어떨까요?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2020년, 고용서비스 사업 심층평가) 에 따르면 경력이 전혀 없는 여성보다 5년 이상 경력단절 된 여성의 취업율이 더 저조하다고 합니다. 다시 사회에 재진입하기위해서도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시점에서 경계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커리어 계발에서 자기착취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두번째로 강조해 말씀 드립니다. 

커리어 계발과 자기착취의 차이는 무엇? 

커리어 계발을 위해, 한 가지만 집중해 시작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이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지속성이 없이 자신을 파괴하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는 노동환경이라면 변화를 요구하거나 거절하셔야 합니다. 내담자의 경우, 다행이 재계약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회복시키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험을 일반화해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직무로 다시 지원해보길 희망했지요. 대신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하고자 전문 능력을 향상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경우의 어떤 분들은 빠르게 일을 해내지못하고 주말까지 근무하는 자신을 탓했습니다. 또는 한 번의 경험으로 이 업무가 자신과 맡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부정적 일경험으로인해 ‘니트족’이 되는 경우도 높습니다. 우리는 그 전에 요구하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담하다보면 과거 조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던 X세대에게서 'MZ세대가있어 너무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X세대였던 직장인 중 회사가 불합리하게 노동을 강요할 때, 불편함을 감수하고 버텨왔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정답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MZ세대는 당당히 요구한다고 합니다. 어쩔때는 그 모습이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들로 인해 회사의 문화가 건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MZ세대의 직장인을 만나보면 그들도 '당당히' 또는 '쉽게' 요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용기를 냈던겁니다. 
 
자기착취는 개인만 손해보지 않습니다 
 
내담자의 경우, 재계약을 거절했고 담당 교수는 모집공고를 냈다고 합니다. 급여가 너무 낮아 지원자가 없었습니다. 교수는 과거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전화해 일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원치 않았지요. 이후 급여를 높여 재등록한 구인광고를 보았다고 합니다. 만약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자기착취를 하며 일경험을 쌓게 된다면 아마 변화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저 또한 그런 적 있습니다. 주말 근무를 요구하는 데 그에 준한 급여체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최종합격했으나 근무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포기사유에 대해 물었을 때, 솔직하지 않아도 됐겠지만 조금의 변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공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주말근무가 빠진 체,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주말에 근무하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에 준하는 급여가 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착취해 더 많은 노동을 하고, 삶의 연속성을 파괴하면 그 피해는 자신에게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나 다음으로 그 직무를 맡게 될 사람까지 피해를 입게 됩니다. 반대로 요구와 거절을 통해 자기착취를 멈추면 그 혜택은 본인 뿐만 아니라 나 다음 사람까지 덕을 보게 되지요. 그러니 나를 넘어 '우리'를위해 용기내야 합니다. '당당히'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상사 또는 고용주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있습니다. "잠시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혹은 "면답드릴 일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겁니다. 
 
"계약 당시 저에게 맡기시겠다는 일 외에 다른 업무들을 더 많이 주고 계십니다. 처음엔 이번만 예외일거라 생각하고 업무를 했는데, 앞으로는 제 담당인 업무만 주시거나 사람을 더 뽑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일을 계약기간까지, 책임을지면서 건강하게 마치고 싶습니다. 그럴려면 요청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경력을 전혀 산정해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간의 일경험으로 신입보다 질적으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조건으로는 같이 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 경력을 보고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시면 고려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