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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이 책의 임자는?)

취미독서말고 기획독서를 해보기로 했다

O:nle 2023. 4. 21. 12:24

제가 초등학생일 때, 새학기가 되면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나눠주고 집에서 작성하도록 했지요. 작성란에는 늘 취미와 특기가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생각했을 때 취미는 잘하진 못하지만 즐겨 하는 것, 특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의미에 맞게 쓸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평가했을 때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림을 잘 그리거나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경험이 부족해 제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즐겨할 수 있는 지 몰랐던 것이지요. 그냥 비워둘 순 없으니 매년 써냈던 것이 있습니다. 취미 : 독서 / 특기 : 독서였습니다. 책읽는 게 취미이자 특기이면 증명하기 쉬울 것 같았습니다. '책읽기'대회같은 건 없으니까 굳이 상이 없어도 특기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요. 하지말 실제로 책을 자주 읽지않았답니다. 그런데 책 욕심은 있어서 새 책 모우는 일을 잘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

 

최근 최재천 교수의 '공부'라는 책을 읽게 됐습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 최재천 교수에게 '공부'는 무엇이며 어떤 공부를 어떤 계기로 하게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뜨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책 읽기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지고 좋지 않다. 책은 일하듯이 계획적으로 빡시게 해야한다. 내 지식의 영토를 넓혀가는 것이 진정한 독서다." 

 

'내가 책을 띄엄띄엄 읽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자체로 안도감을 얻고 있었던 듯 합니다. 나는 학습하고 있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라는 생각에 빠져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생각까지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전문성을 높여줄 책들에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가지 키워드로 찾아내 읽거나 작가 중심으로 리서치해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두거나 기획된 게 아니라 대부분 그때 그때 끌리는 책을 읽지요. 앞서 읽던 책이 불러들이는 책을 읽는 겁니다. 두번째는 나의 전문성과 크게 관련성이 없으나 우연이 접하게 되는 책 입니다. 도서관에 갈때마다 새로 신청된 책들을 훑어봅니다. 그 중 흥미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에세이나 그냥 제목이 끌리는 책, 커버 색이 눈에 띄는 책을 종종 고릅니다. 최근엔 조향사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듯 그 시기에 관심이 가거나 흥미로운 것들을 중심으로 책을 읽었던 듯 합니다. 그랬더니 책을 꾸준히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아마 책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만 좋아한 듯 합니다. 이것도 책읽기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조금더 촘촘하게 주도적인 책읽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슈퍼컴퓨터가 더 잘할테니까요. 다만 책읽기분야에도 나의 주도성이 더 담길 수 있길 바라는겁니다. 그러면 한 해가 끝났을 때 조금 더 뿌듯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것이 책읽기를 일처럼 하는 저만의 방식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획독서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2월이되면 기획독서를 통해 얻은 저의 인사이트를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구체적인지 않습니다. 이렇게 일하듯 독서를 해보면 저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최재천교수의 '공부'란 책을 읽으며 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질문자 안희경님이 했던 말의 일부분입니다. 최재천 교수가 수많은 일을 일정 내에 소화할 수 있었던 비법 혹은 멋진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미리하는 습관'에 대해 얘기나눴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히 해내기 어려운 습관이라 생각됩니다.   

 

"고무줄에 비유하면, 팽팽하게 당기기만 하고 이완시키지 않으니 어느 순간 철사처럼 굳어져 자기를 찌르는 거 같습니다. 저도 미리미리 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인데, 오랫동안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 습관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일들이 질적으로 괜찮은 결과를 얻으려면 양의 축척이 선행되어야합니다. 그런데 나를 한계로 내몰며 무리하게 양의 축척을 하거나, 나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양의 축척 없이 괜찮은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이 두가지를 반복해왔던 듯 합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주도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거절하는 사회적 기술과 미리하는 습관이 꼭 필요하지요. 기획독서를 하는 목적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자'하는 내용입니다. 

 

"가르침은 없습니다. 배움만 있어요. 새끼 침팬지는 옆에서 그냥 보고 배워요.  동물 세계에는 선생이 없거나 있어도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그냥 거기 있고 아이들이 보고 배웁니다. 우리는 아이를 너무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아닐까? 침팬지가 배우듯이 몸으로 익히면 긴 인생에 훨씬 더 강력한 학습이 될 텐데, 급하게 욱여넣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자세를 다른 동물에게서 배워봅니다. 물론 저렇게 학습한 침팬지는 지구를 정복하지 못하고 빡시게 공부하고 사교육을 시킨 호모사이엔스는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이가 지구를 정복할 위인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몫이지요. 동물스러운 교육은 결국 아이에게 주도성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교육은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엄마침팬지처럼 저는 제 자신을 지키고, 저의 일상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아이 곁에, 그냥 있으려 합니다. 가르침은 없고 배움만 남도록...

 

<최재천의 공부>를 읽으며 제가 그동안 해온 공부와 앞으로 해야할 공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세대의 공부까지 가지를 뻣쳐 고민해보았습니다. study의 어원은 라틴어로 stúdĕo라고 합니다. 몰두하다, 열중하다, 갈망하다와 같은 뜻이 있습니다. 공부는 욕구를 좇아다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욕망을 가진 인간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공부가 없는 삶은 결코 없습니다. <최재천의 공부>는 <최재천의 삶>이란 뜻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