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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진화론을 아들과 공부하는 이유

O:nle 2023. 4. 10. 19:26

Bedtime story. 잠자기 전에 어린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를 뜻합니다. 아들이 한글을 모르던 어린시절. 저도 이따금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육아휴직을 쓰고 육아에 전념 할 때는 꽤 자주 읽어준 듯 한대요. 다시 직장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저녁먹고 아들을 씻기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벅차죠. 아들을 재우려 누었다 제가 먼저 잠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잠자기 전 동화는 사라졌지요. 그리곤 아들이 한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제가 책 읽어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잠 잘 시간에 아들이 책 한권을 들고와 제 침대에 누어 같이 책 읽자고 하더군요. 혼자 잠들기 싫은 아들이 애교를 섞어 꽤를 부린겁니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엄마 책이 훨씬 재밌어. 넌 니가 고른 책 읽고, 엄마는 엄마꺼 읽을래."라고 답했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그럼 내가 엄마책 같이 읽을 게!"하고 제 옆에와 제가 읽는 책을 같이 보더군요. 그날 제가 보던 책을 소리내 읽어주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제가 읽어도 재밌고 아들이 들어도 좋을 만한 책을 선택하기로. 그렇게 찾게 된 책 <멈출 수 없는 우리 : 인간은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을까>입니다. 
 
저는 진화심리학을 공부하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매우 유익한 이론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아들이 알게되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수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혼자 잠자기 무서워하는 자기자신을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달콤한 마카롱을 게 눈 감추듯 먹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그리고 인간이 가진 위대함은 시험 성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협력하는 힘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는 그간 만화로된 역사책을 종종 읽었습니다.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뼈아픈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린 외칩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고... 4월이 되니 노란 리본을 달고 외쳤던 메세지가 다시 떠오르네요. 우리가 세월호사건을 기억하는 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까요?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역사의 모든 사건은 유일무이하기때문에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기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랍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나 관념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국가, 돈, 기업, 종교 등과 같은 개념들로부터 '나'를 읽어내고, '나'라는 퍼즐을 완성해 갑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면 그 영향력을 줄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역사를 공부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인과관계를 기억해 같은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매커니즘을 깨닫고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일이라 해석됩니다. 역사 학습이 진정 우릴 자유롭게 할 지, 또는 더 단단하게 획일화 시킬지 사실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학이 바라보는 역사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 중 한 분야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아들과 읽기 시작했을 때,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동물이라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을 잘 수용하고 이해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책을 한 권 다 읽다보니, 수용을 넘어서 해방되는 기쁨을 아들이 얻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긴 흐름을 이해하고, 다음 세대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길 희망합니다.
 
평소 독서를 안하는 아들에게 내용이 어려울 수 있었는데 꽤 흥미롭게 책을 읽었습니다. 엄마와 즐겁게 얘기할만한 시간이 생겨 좋아했는 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저 또한 아들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아들이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떤 동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커서 힘이 쌨지만, 덩치가 커서 많이 먹어야되는 데 먹을 게 없을 땐 빨리 죽네. 작은 고추가 매운게 맞나봐 엄마!"   

"인간의 발이 닿는 곳마다 덩치가 큰 동물을 다 잡아먹어서 멸종됐네. 지금은 그렇게 멸종될까봐 가축으로 키우니까 인간이 똑똑해졌네~ 소는 멸종되지 않았잖아. 근데 멸종시키는 게 나쁜 걸까? 잡아먹기위해 태어나게 하는 게 더 나쁜 걸까?"

"지금은 호모사이엔스가 지구를 정복해서 많이 살고 있지만, 내가 만약 죽으면 '나'는 멸종인거잖아! 나는 이 지구에 한 명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를 잘 지켜야겠네~"  

아들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다양한 질문들을 들으면서 저 또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책을 못읽어줘 미안한 맘이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9살이 된 아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 함께 책 읽기 가장 좋은 시기란 생각이 듭니다. 아들과 읽을 다음 책을 또 골라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