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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일기쓰기, 고고학자 인챈트가 필요해"

O:nle 2023. 4. 4. 17:01

아들은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일기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일기쓰기를 왜 해야하는 지 묻는 아들에게 저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꺼내 보여줬습니다. 제 일기장을 보며 아들이 신나게 웃었습니다. "엄마 받침 다 틀렸네~" "엄마도 공부하기 싫어했네~"하며 어릴적 엄마의 일상을 보고 즐거워 합니다. 그때 아들에게 얘기해줬습니다. 
 
"아들, 그 일기장 엄마 보물 1호다! 어릴적 엄마를 만나고 싶을 때 저 일기장을 읽어보면 돼. 다행이 저 일기장을 할머니가 안버리고 털실로 묶어서 보관해 주셨어. 그래서 지금까지 엄마가 들고 있는거야. 건우도 지금 쓰는 일기장이 나중에 보물 1호가 될 수 있어!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거야. 일기쓰는 건 국어공부하려고 쓰는건 아니야. 그래서 엄마처럼 받침 다 틀려도 괜찮아. 그니까, 숙제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써서 우리 모아놓자."
 
그리고 2학년이 돼, 다시 일기 쓰기가 숙제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아들의 일기장을 봤습니다. 제목은 <일기쓸 게 업슴>입니다. 내용에는 엄마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되고 일기쓰기는 재미없고, 지루하고, 쓰기 싫어죽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특별한 일이 없는데 쓰려니 힘들다"며 "일기 쓰기 쉽게 특별한 일들이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아직 일기쓰기가 가진 힘을 초등학교 2학년이 알기 어렵지요. 우선 '일기쓸 게 없다'는 주제라도 일기를 ‘썼다’는 것을 두고 칭찬했습니다. 쓰기 싫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했지만, 일단 혼자서 썼으니까요.^^       
 
우리의 일상이 매일같이 특별하고 새로운 일들로 가득하면 좋겠지요. 마치 여행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1년 365일 여행하며 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실제 그런 삶이 있다고해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예측가능하며 반복되는 일상이 뿌리는 내려주니까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이 저 편에서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이죠. 여행을 가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로운 보물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 꾸준히 성장하게 됩니다. 결국 삶은 '해석'이란 생각이 듭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청년들에게 코멘트를 해줄 때 이 말을 자주합니다.
 
에세이 한 권, 다 읽지 않더라도 목차의 제목만이라도 한 번 훑어보세요. 아주 대단한 경험, 특별한 희소 경험을 기록한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을 다룹니다. 누구나 한 번 쯤  해본 소소한 경험과 개인의 성찰이 만나 한 편의 책이 됩니다. 장날 떡볶이를 사먹었던 경험, 봄이 오면서 분갈이를 하며 느낀 감정, 퇴근 길 버스 안에서 하게 된 고찰이 우리를 평온하고 단단하게 키웁니다. 아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보물을 찾아내길 바라며 얘길 나눴습니다.
 
나     : "저번에 게임하면서 '고고학자 인챈트' 엄마한테 알려줬잖아. 그게 무슨 기능이랬지?"

아들 : "아~ 그거! 그냥 곡괭이로 땅을 파면 돌같은게 나오는데, 고고학자 인챈트를 쓰면 공룡뼈도 나오고, 보석도 나오고 그래! 완전 좋지? 엄마도 그게 맘에 들어?" 

나    : "응! 엄마 그거 완전 맘에 들어. 길가다 우리가 돌이나 뼈, 깨진 그릇 같은 걸 봤으면 ‘이건 왠 개뼈다귀야!’하고 발로 퍽 차고 지나갔겠지. 근데 고고학자가 봤다면 그 중에 석기시대 유물이거나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발견했을지도 몰라! 그지?

건우 일기봤는데 '쓸 게 없다'고 해놨더라. 건우 게임할 때 말고 평소에도 고고학자 인챈트가 필요한거 같애. 고고학자 필터를 쓰고 건우의 일상을 바라보면 분명 보물이 눈에 보일거야! 엄마랑 같이 찾아보자. 띠리띠리~"

아들 : "엄마 인챈트 그렇게 쓰는 거 아니거든!"
 
그리고 일상 속 글감 찾아내는 연습을 아들과 했습니다. 저 또한 고고학자 필터가 필요합니다. 저의 하루는 여느 엄마의 일상과 다를바 없이 평범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식사를 준비하고, 아들 등교를 돕습니다. 그 다음은 간단히 운동을 합니다. (운동을 시작한 것도 사실 얼마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컴퓨터를 켜 뒤적뒤적 검색하거나 책을 읽으며 메모합니다.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면 간단히 음식을 먹고 식기세척기,세탁기를 돌립니다. 집안일을 할 때,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떱니다. 그렇게 순삭! 아들은 1시나 2시 30분이면 집에 옵니다. 오후에는 아들과 수다를 한 판 떨다가 5시면 저녁을 준비합니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같이 티비를 보며 하루가 끝납니다.

저에게도 고고학자 인챈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기록을 위한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고, 생각을 글로 다듬는 일. 오늘도 기록하기위해 아들과의 소소한 대화에 의미를 부여해 봅니다. 인챈트 뜻을 찾아보니 enchant : 마법을 걸다 라는 뜻이더군요. 제 삶에도 성장을 위한 마법필터을 끼고 일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