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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꽤 괜찮은 어린이라는 생각

O:nle 2023. 4. 6. 17:01

나 : 엄마 생일 선물 뭐줄꺼야?

아들 : 음~ 엄마 소원 하나 들어줄께 얘기해봐. 나한테 바라는 점 같은 거.

나 :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 데? 건우 다 잘 하잖아.

아들 : 음~  그렇긴 하지. 밥도 적당히 잘 먹지. 양치도 저녁엔 잘 하고, 옷도 잘 걸어놓고, 게임도 적당히 하고 멈추지. 학교도 적당히 잘 다니고. 공부를 엄청 잘 하진 않지만 적당히 하니까~ 완벽하진 않지만 나는 쫌 괜찮은 어린이네.

나 : ㅋㅋㅋㅋ 맞아. 엄마가 생각해도 넌 쫌 괜찮은 어린이같애. 그래서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도 계속 받았나봐.

아들 : 그럼 엄마는 나한테 부탁할게 없네~ 근데 엄마! 내 생일에는 해리포터 마법지팡이 사줘! 그거 아니면 나 닌텐도 게임팩 필요해!

제 생일이 다가오면서 아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오늘은 아이의 자존감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아들이 입학하기 전, '무탈하게 학교 적응만 잘 해다오~' 소원했습니다. 다행이 아들은 아침에 눈떠 학교가는 일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습니다. 예습을 열심히 하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걱정이 스멀 스멀 올라왔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떨어지고, 뒤쳐질까봐 염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자존감’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새 것이고 처음인 우리 아들에 비해 또래의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4학년까지 수학을 끝냈다고 했습니다. 영어 단어를 분기별로 100개씩 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급히 아들한테 "너 알파벳 소문자 알아?"라고 물었더니 알파벳 A를 쪼꼬만한 사이즈로 쓰더군요.^^ 가르친 적 없으니 당연한 결과겠지요. 예습을 탄탄하게 해온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보잘것없이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될테니까요. 나는 모르는 건데,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면 자존감에 상처입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을 '꽤 괜찮은 어린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적당히 잘 먹고, 적당히 규칙을 지키고, 적당히 공부도 해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죠. 아들과 이야기 나누며 깨달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자존감 아닐 까?하고 말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준 질문지에 답을 써보는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항 중에 자신이 남들보다 잘 하는 일, 자랑할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 지 쓰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인사를 잘 하고, 멋진 미소를 가졌다고 답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웃음이 터져나왔지요. '예습을 하지 않아 공부를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란 가설은 경쟁사회 속 어른인 제 시선에서 나온 평가였습니다. 인생 9년차 아들은 '적당히'하면 꽤 괜찮은 어린이가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적당히'하는 걸로 충분하지 못하다 느낍니다. 자기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낄려면 충족해야할 조건이 훨씬 많고, 그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저만해도 그러합니다. 저한테 누가 "잘 하는 게 뭐에요?"라고 물어보면 대답할게 없어 머릿속을 뒤적입니다. 요리를 훌륭하게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안 정리를 엑설런트하게 하지 못합니다. 식물 기르는 일을 좋아하지만 퍽하면 죽이니 그 일도 별로입니다. 패션감각도 제로입니다. 아이와 퍽하면 다투고 있으니 감정조절도 잘 못합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즐기지만 훌륭한 문장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요. 잘 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로 못하는 것들을 늘어놓게 되네요.
 
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저는 요리를 적당히 합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 학교 급식이 더 맛있다고 하지만 아~주 가끔은 아들이 엄지척도 해줍니다. 우리집에 오게 된 식물이나 동물 중 꾸준히 잘 키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집정리도 저만의 규칙대로 가족이 불편한 일 없이 합니다. 옷은 TPO에 맞게 입고요. 글을 못써도 꾸준히 쓰고 있으니 좀 늘지 않을 까 기대해 봅니다. 제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고 솔직하게 대하고 있으니 꽤 괜찮은 엄마이자 괜찮은 어른일지 모르겠습니다.

알고보면 우리 대부분이 꽤 괜찮은 엄마입니다. 그러나 엄마의 자존감이 낮아 자신을 부족한 엄마라 여기면, 자녀가 가진 결점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내가 제때 안가르쳐서 그래’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줬어야 했어’ ‘그때 병원에 갔더라면 키가 더 컸을텐데…’ ‘꾸준히 운동을 좀 시켰어야 했어’ 등등. 그러면 자녀의 약점에만 집중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아이의 약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채워 넣으려 하겠지요. 어느새 아이의 행복은 놓치고, 아이의 자존감도 떨어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꽤 괜찮은 엄마이자 어른입니다. 그것을 인정해주면 아이도 자기자신을 꽤 괜찮은 어린이로 믿으며 자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