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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O:nle 2023. 3. 21. 12:44

아들이 3살때부터 함께 동네 도서관을 다녔습니다. 날이 좋으면 도서관 야외 벤치에 앉아 김밥도 먹고 꽃구경하다 집에 돌아갑니다. 어느날은 어린이도서관에서 구연동화를 듣기도 하고 그랬지요.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많이 읽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빌리거나 사서 모우는 편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때 작가와 목차를 읽고, 그걸 그대로 가방 속에 2주동안 들고 있다가 그대로 반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새책은 읽지않아 선물할 때도 종종 있지요. 그래도! 그래도. 아들과 도서관을 지금까지 자주 다닙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저는 2년째 봉사활동으로 학교 사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 제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렇다고 싫어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책을 좋아하게 됐을까요? 잘 읽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책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학교 도서관에 와 저에게 인사만 하고 친구들과 장난치다 갑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도서관을 방문하지만 아들은 책 한 권을 빌리지 않습니다. 아들의 취향은 놀랍도록 확고합니다. 책을 안좋아 합니다.(그렇다고 싫어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 사서 봉사를 하다보면 독서수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 선생님의 독서 교육 방식을 살피게 되었지요. 느낀 점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한 선생님이 반 전체를 데리고 학교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고, 숙제하기 바빠 책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아마 아이들이 책을 접할 시간을 만들어주기위해 다 함께 온 듯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읽을 책 한권을 골라 자리에 착석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10여분이 되지 않았을 때 입니다. 한 아이가 책을 읽지 않고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다른 책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책을 읽지 않고 뭘 하냐"고 물었고 아이는 "다 읽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읽은 책을 가져오라고 했고, 책 중간 한 두장을 읽어보시고 퀴즈를 냈습니다. 아이는 답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혼이 났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야하는데 퀴즈를 맞추지 못한 것은 대충대충 읽었다는 의미이므로 다시 읽으라고 하셨지요. 이 학급의 어린이들은 아주 정숙된 분위기 속에서 독서수업을 마쳤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이 책 저 책 다 꺼내 읽으면 봉사하러온 제가 힘들어질까봐 배려해주신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연설명을 듣지 못한 그 아이는 책과의 만남이 썩 유쾌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아이가 저였다면 앞으로 책을 고를 때 너무 너무 신중해질 겁니다. 책 빌리는 일을 즐겁게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왜냐면 한 번 고른 책은 꼭!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읽어야 하니까요. 사실 그렇지 않지요. 어떤 책은 내가 궁금하고 좋아하는 부분만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은 그림만 쓱~ 보다가 몇 줄 읽기도 합니다. 수업이 끝나고 책을 빌려가는 아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스타일의 독서 방법을 가진 선생님도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 일정 시간동안 책을 읽게 한 다음, 자신이 읽었던 내용을 짝꿍에게 설명하도록 시켰습니다. 수업시간동안 다소 산만하고 부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친구가 소개해준 책이 재미있게 느껴진 아이들은 책을 빌려갔습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흥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학급의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전반적으로 많이들 책을 빌려갔습니다. 

 

다양한 영상매체에 노출 된 요즘 아이들의 독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책을 멀리하는 자녀들을 보고 부모님들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강제로 읽어야하는 것 외에는 전혀 책을 읽지 않아요."라고 말씀들 합니다. 과제로 제시된 책만 읽고 이 밖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저도 아들이 책을 재미있어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목표는 아들이 책읽기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싫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 생각은 그러합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책이 싫어지게 만들지 않는다면 본인이 원하는 순간 인생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말고요. 책 밖에서 우리는 더 많은 걸 배우고, 영감을 얻기도 하니까요.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