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들이 태어날 시기, 일을 하느라 출산 준비를 할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예정일보다 훨씬 앞서 아들을 낳아야했기에 그 흔한 배넷저고리 하나 사놓지 못했지요. 수술로 아들을 낳고나서 황급히 남편을 시켜 베이비페어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오라고 시켰죠. 남편는 먼저 출산의 경험이 있는 친구와 코엑스에가 손수건을 100장 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침대에 누어 열심히 검색엔진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국민육아템'이라는 것들을 볼 수 있었죠. 국민육아템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육아를 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구비해 놓고 있는 아이템을 뜻했습니다. 정말 다양했습니다. 장난감, 책, 옷, 젖병, 소독기, 욕조, 아동샴푸, 로션 샐 수 없이 많은 장비가 있었습니다.
제 것을 사야했다면 남들이 뭐라건, 스스로 생각컨데 불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필수용품을 구입하거나 흡족한 소비를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내 아이를 위한 첫번째 선택이라 국민육아템이라 불리는 것들을 사주지 않으면 엄마의 역할을 평균미달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젖병의 실리콘 젖꼭지가 회사별로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쓴다는 것으로 구입하고, 욕조가 얼마나 다른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남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으로 소비했습니다. 평균치만큼의 엄마가 되기위해 노력한 듯 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초등학교를 가면서 주변 학부모들에게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평균만 따라갔으면 해서 시키는 거죠"하는 말입니다. 키도 몸무게도 평균만큼 컸으면 좋겠고, 성적도 평균만큼 냈으면 좋겠고, 운동도 평균, 사회성도 평균만큼은 갖고 있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저 또한 그러합니다.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들은 영유아 검진을 할때마다 평균치의 키와 몸무게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골고루 먹지도 않고 먹는 양도 적습니다. 입안 감각이 예민해 식감에 따라 가려내는 음식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약도 먹여보고, 칼슘제도 사먹이고 나름 신경을 쓰고 있지요. 쓴 한약이 먹기 싫다는 아들에게 "니가 반에서 제일 작잖아"하며 한약을 먹으라고 강요도 했습니다. 제 아이를 평균에 끼워넣기위한 노력이 엄마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어른인 저 또한 평균만큼 삶의 질을 누리고 살기를 바랍니다. 국룰이라는게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을 뜻합니다. 국룰이란 말로 삶의 전반에 보편적 기준이 생겼습니다. 국룰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신혼집의 국룰, 축의금이나 조카용돈 국룰, 직장생활의 국룰, 주말 데이트의 국룰, 가족 나들이룩의 국룰 등이 나왔습니다. 이것들을 보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 국룰에 꼭 들어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평균이라 행복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다이버시티 파워>라는 책 내용 중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비행기 사고를 줄이고 안정성을 높이기위해 비행기 조종사의 시트를 만들고 위치를 설정하는 섬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종사 모두의 팔길이 다리길이 등 신체 사이즈를 다 잰다음 평균을 냈다고 합니다. 그 평균값에 맞춰 시트를 만들어 설치했지요. 그 시트에 맞는 조종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시트를 움직여 개개인에 맞출 수 있도록 다시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국룰에 딱 들어맞는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주 극소수이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평균이라 안도감을 얻는 사람보다 평균에 도달하지 못해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결국 내 아이를 평균에 집어넣기 위한 노력, 나 자신이 평균에 가까워지려 한 노력은 열패감을 안겨줍니다.
특히나 요즘 직장인이 하는 일이란 게, 분화되어 있습니다. 최종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지 않습니다. 효율성을 높이기위해 개개인이 일부분만 책임지고 있지요. 그런 환경 속에서 평균적으로 대다수가 할 수 있는 일을 평균만큼의 깊이로 해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AI에게 대체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분업을 너머 파편화된 현대의 일은 프로세스화되고 그 다음은 자동화 됩니다. 우리는 평균이 되고자 열패감과 싸워가며 노력했고, 그 결과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님의 저서 <그냥 하지 마라>라는 책을 읽어보면 이부분과 관련된 미래 흐름을 보다 쉽게 이해할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균만큼 국어, 영어, 수학을 공부하고 평균만큼의 몸무게와 키를 키우고자 노력하면 결코 경쟁력을 갖출수 없습니다. 미래에는 한 가지일을 장인급으로 깊이있게 파고 드는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또는 플랫폼 제작자가 되어야 승산이 있다고 송길영님은 말합니다. 그럴려면 전략적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성과없는 열심’과는 다릅니다. 전략적 꾸준함을 기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의지가 필요하고, 의지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때 표출됩니다. 결국 우리는 평균이 아니라 only one인 ‘나’가 되어야 합니다.
돌아오는 여름에 또 한약을 지어 아들을 먹일 생각입니다. 그런데 평균만큼 키를 키우기위해 먹이진 않을겁니다. 표면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저에겐 큰 차이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