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수영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따라 빨간불에 걸려 대기할 시간이 잦았지요. 그러던 중 건우에게 겨울방학동안 무엇을 할지 얘기나누게 됐습니다.
"건우야, 이제 겨울방학이잖아.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건우가 한 번 정해봤음 하는데 어때? 저번 여름방학때는 줄넘기하고 책읽기 한다고 했는데 엄마가 하라고 할 때만 대충 하고 안했잖아. 그것도 어찌보면 건우가 스스로 정한게 아닌거 같아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엄마가 또 개입할꺼야. 그전에 건우가 자유를 뺏기지 않고 스스로 정해봤음 좋겠어. 그래야 화가 안난다."
"맞아. 양치 내가 할라고 했는데 엄마가 양치하라고 말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져. 짜증나."
"왜 그런줄 알아? 자율권을 뺏겨서 그래. 사람은 다 그래. 어떤 가게 앞에 동네 애들이 맨날 시끄럽게 떠들고 놀았대. 가게 아저씨가 그만 떠들라고 혼내도 애들이 안멈췄어. 그런데 아저씨가 우리 가게 앞에 와서 떠들면 500원을 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500원 받고 떠들었는데, 며칠뒤에 아저씨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앞으로는 200원만 받고 떠들어 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애들이 그 돈 받고는 못떠들겠다고 다시는 안왔대. 웃기지."
"ㅋㅋㅋㅋㅋ 원래 10원도 안받고 떠들었으면서 200원이나 준다는데 안온대? 엄마 나는 200원 주면 떠들어 줄 수 있는데."
"근데 애들이 왜 돈을 줘도 안하겠다고 했을까? 그 아이들은 처음엔 떠들고 노는 게 목적이었어. 자기네가 좋아서 자유롭게 가서 떠들었는데, 목적이 달라졌어. 200원을 위해 '자유' 없이 가게 앞에서 떠들어야 됐던거야. 그래서 그 일이 싫어진거지."
“나도 그런적 있어! 엄마 나는 친구랑 같이 게임하는 거 좋아하잖아. 근데 똑같은 게임인데 xx친구가 끝판을 보여달라 그래가지고… 무조건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게임을 한 적 있었어. 원래 나는 끝판 깰려고 게임하는 건 아닌데, 그렇게 게임하니까 재미도 없고 힘들기만 했어. xx친구가 다른 건 못하게 하니까. 게임이면 무조건 좋은 게 아니였어. 내가 목표를 자유롭게 세우고, 그걸 할 수 있어서 좋았나봐."
"역시 우리 아들! 건우가 게임하기전에 '오늘은 놀이터 그네 만들고 끝낼꺼야'라고 말하고 하잖아. 건우가 자유롭게 계획을 세우고 참여하는거라 좋은거야. 그런데 엄마가 '오늘 그네 만들어!'라고 했으면 달라질 수도 있어. 건우가 겨울방학 계획 세워볼래?"
"응! 일단 집에 가서 게임 3시간 하고."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아들입니다. 건우는 제가 전하고 싶은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그와 같은 일을 찾아냅니다. 상황을 들을때마다 정말 기발하다고 느낍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이해했다고 해서 행동으로 전부 옮기진 않습니다. 어른인 저도 머리론 이해하고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지난 여름방학보다 이번 겨울방학, 1cm라도 앞으로 전진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어린이가 아닐까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다는 걸 알고부터 1월 1일의 계획이나 다짐은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초등학생땐 방학이 시작되면 동그란 하루 일과 계획표를 세우곤 했습니다. 빼곡하게 채워진 24시간 계획표는 하루도 가지 않아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됩니다. 계획을 지켜 뿌듯함보다 지키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크지요.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계획 세우는 일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지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겨울방학 계획을 세워보자고 말합니다. 대신에 지키기 쉬운 느슨한 계획을 세워보는 겁니다. 그 계획은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설계하게 합니다. 건우가 겨울방학동안 적당한 좌절감과 적당한 성취감으로 채워나가길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