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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줄넘기를 잘 한다는 건 어떤건데?

O:nle 2022. 7. 18. 14:29

장마가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다가왔습니다. 조금있음 제 아들은 처음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합니다. 봄에는 학교가는 일이 즐거워 아침이면 눈을 번쩍 뜨고, 학교갈 준비를 서둘렀던 건우입니다. 그런데 여름쯤 되니 수업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고 주말이 얼른 오길 기다리고 있지요. 그런 건우에게 여름방학은 너무나 신나는 이벤트가 될 것 같습니다. 건우의 즐거운 여름방학을 같이 준비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에게도 '여름방학'이란 단어는 묘한 기대감을 가져다 주었지요. 여름방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시골할머니댁에 놀러가는 일이었지요. 낮에는 물놀이를 하고, 밤에는 평상에 누어 모기향냄세 맡으며 달달한 수박을 먹으며 깜깜한 밤하늘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지요.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행복바이러스가 온몸을 휘감는듯 합니다. 건우에게 이런 추억하나쯤은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방학의 가장 큰 매력은 '학교를 안가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다릅니다. 아이가 학교를 안간다고 해서 부모의 회사가 쉬는 것은 아니죠. 아이들의 방학은 빼곡히 학습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방과후수업을 듣기위해 방학에도 아침에 눈을떠 학교를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나면 여름방학 특강으로 기획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저 또한 여러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 중 수영강습과 스케이트강습을 찾게 됐지요. 아들에게 배워보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자신의 목표는 놀고 먹는 것인데 많은 것을 배우기 싫다고 했지요. 

 

그 순간 욱!하고 화가 올라왔어요. 다양한 경험을 시도해보길 바라는데 '놀고 먹기'가 목표라니... 화를 누르고 원치 않는데 학원을 보내진 않을테니 새로운 목표를 3가지 세워보자고 했지요. 아들은 짜증을 부리며 '왜 목표가 있어야하냐'고. '못하는 걸 잘 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 모습으로도 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이 틀리지 않았지만 목표는 부족한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님을 알려줘야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지요. 그리고 학원을 다니는 건 아이를 괴롭히기위한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게 체계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임을 말해주었습니다.

 

대화의 끝에 3가지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번째는 만들기 두번째는 줄넘기 세번째는 저축해서 장난감사기였습니다. 첫번째 만들기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물을 사서 집에서 작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로 창의적인 건우가 되는 것이 목표였지요. 두번째 줄넘기를 잘해서 튼튼한 건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세번째는 돈에 대해 공부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건우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객관적 수치로 이 목표를 세분화하기위해 대화를 이어가던 중 제가 물었습니다. "줄넘기를 잘한다는 건 어떤거야? 양발뛰기 20개를 목표로 할까?" 그랬더니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줄넘기를 잘 한다는 건 줄넘기를 조금씩 꾸준히 연습해서 오랫동안 즐겁게 한다는 거야. 20개 뛰기를 목표로 안할래."  징징거리면서도 정확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건우가 대견하기도 하고 건우의 대답 덕분에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길 바라고, 운동을 잘 하길 바라고, 책을 잘 읽길 바라고, 악기를 잘 다루길 바라고, 친구를 잘 사귀길 바라고, 선생님 말을 잘 듣길 바라죠. 아이에게 '잘 해~'라고 말할 때 내가 기대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해 남들만큼 해내거나 남보다 우위에 서는 것, 또는 나를 꾸며줄 수식어를 획득해 인정받는 것이었나봅니다. 저 또한 진로상담을 잘 하기위해 어떤 타이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제가 잘 하고 싶은 것은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러닝메이트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그 일을 사랑하면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것은 대학원에서 줄 수 없으며 자격증을 딴다고 그 순간 생겨나는 것도 아니지요. 

 

잘 한다는 것은 건우말대로 그 일을 오랫동안 즐겁게 하는 것 같습니다. 줄넘기는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입니다. 건우가 줄넘기를 연습해 50개를 뛰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줄넘기에 질려버려 다시는 줄넘기를 찾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목표를 이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줄넘기를 조금씩 연습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손쉽게 줄넘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목표달성이 아닐까요? 무언가를 잘 한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을 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