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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무엇보다 니 마음이 편안했음 좋겠어"

O:nle 2022. 5. 29. 12:54

초등학교 입학 이후 건강검진이 있었다. 해당 병원에가서 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들러 검진을 마쳤다. 어금니 중 영구치가 2개 올라왔다고 했다. 홈메우기로 예방하는 치료를 해주면 좋다고 치과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한 주 후 다시 치과를 찾았다. 아들은 아주 어릴때부터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왔지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진료는 처음으로 받게 된 것이다. 어린이치과라 뽀로로가 곳곳에 보이지만 진료 방식은 똑같다. 입을 벌린 채 누워서 물을 쏘고 코로 숨을 쉬라고 주문한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아들은 당황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치과의사는 다음 주에 다시 시도해보자며 치과에 대한 트라마우가 생기지 않게 오늘은 그냥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다시 일주일 후로 예약을 해 두었다.

 

"엄마! 몇 밤 자고나면 치과가는거야?" 아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이 질문을 했다. 매일같이 답변을 해주었고 디데이가 되었다. 똑같은 질문에 "오늘은 학교마치고 바로 치과가야하니까 놀이터에서 놀지말고 곧장 집으로 와"하고 말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학교로 갔다.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건우가 치과가는 것때문에 겁이나서 하루종일 선생님 말에 집중도 못하고,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치과가기위해 집에 가야한다고 때를 썼다는 것이다. 아마도 멘붕이 왔던 모양이다. 치과에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시간 내내 불안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들이 집에 왔을 때 나에게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늘 학교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혼날 걸 알았지만 혼나는 것보다 치과가는 게 더 무서웠고, 그런 자신에게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 집에가 게임을 충분히 하고 치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였다. 아들이 치과가는 일을 겁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정도로 높게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지 몰랐다. 

 

"건우야. 이가 썪은 것도 아니고 예방차원에서 진료받으려고 했던건야. 건우가 이렇게나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면 조금 더 뒤로 미루면 돼. 오늘 꼭~ 가야만 하는 건 아니야. 생각해보니 엄마도 처음 치과갔을땐 진료 못하고 그냥 집에 돌어왔어. 심지어 의사선생님이 의자에서 비행기도 태워주고, 거기 있는 기기를 다 만져볼 수 있게 해줬는데 엄마는 비행기만 타다 그냥 왔어. 근데 엄마가 그때 생각못하고 건우가 한 번에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네. 여름방학되면 그때쯤에 갈까? 대신에 양치 꼬박꼬박 잘 해야돼.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니가 책임지고 해야하는 거야." 아들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당장 안갈 수 있다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그리고는 "내가 엄마 닮아서 치과가서 한 번 만에 못했네"라며 웃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약을 삼킬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캡슐형태의 알약을 삼키려다 목에 걸려 식겁해본 경험이 있다. 이후 나의 엄마는 늘 가루약을 제조해달라고 말해 처방해주었다. 왜 너는 알약을 삼키지 못하냐고, 도전해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어릴 때 김밥 속 오이의 비릿한 향이 싫어 헛구역질을 한 적 있다. 이후로 엄마는 내 김밥엔 오이를 넣지 않았다. 건강한 음식이니 강제로 먹어보라고 하지 않았고 나는 지금 오이를 잘 먹는다. 그러고보면 나의 엄마는 아이 마음이 편한게 우선이었다.  

 

사실 내가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은 아이가 자립하는 데 있어서, 조금은 평온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이답지않게 많은 걱정과 불안 속에서 커가길 원치 않는다. 스트레스가 모두 나쁜 것이 아님을 알지만 멘붕에 빠트려가며 하드 트레이닝을 시킬 생각은 없다. 본인이 허락한 수준에서 조금씩 연습해가면 되는 일이다. 아들은 첫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새로 사귄 친구집에 처음으로 놀러간 적 있다.  친구가 초대해서 갑작스레 가게 됐고, 떨렸다는 얘기를 했었다.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본 것이었다.   

 

오늘 치과를 간다고 했지만, 건우 마음이 그토록 불편하다면 미루거나, 또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엄마는 무엇보다 건우 마음이 편안하길 바란다고. 이번 일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또 한번 다짐했다. 아들에게 좋은 일,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지만 아들이 지금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강제해선 안된다. 시간이지나 아들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 여전히 no!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선택이다. 그 아이의 삶인 것이다. 나는 다만 설명하거나, 기다리거나, 받아들이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