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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엄마와 자식이라 사과가 필요하다

O:nle 2022. 5. 29. 12:53

띠띠띠띠 "다녀왔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건우의 소리입니다. 오늘도 무탈히 집으로 돌아온 아이를 안아주고 속으로 감사합니다 읍조리게 됩니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건우는 오늘 어떤 친구랑 어떤 놀이를 했는 지, 선생님한테 칭찬받거나 혼이 났던 순간을 쉬지 않고 얘기합니다. 이 시간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저또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내 얘기를 들어줄 엄마가 있었습니다. 씻으러 화장실을 들어가는 순간에도 말을 끈지 않고 엄마에게 학교에서 경험한 것들을 얘기했던 듯 합니다. 그 시간은 어린 내가 학교에서 느낀 긴장감을 풀고 억울하거나 힘든 감정, 기쁘고 설렜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건우와도 그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날은 아들이 학교 마치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친구와 2시간 게임하며 놀고, 친구는 학원에 가야해 집으로 돌아갔지요. 아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그 바람에 하교 후 책가방을 열어보고, 오늘 어떤 수업을 들었는 지, 친구들과 놀면서 혹은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느낀 감정에 대해 얘기 나누지 못했습니다.

 

게임을 멈추고 늘 하던 루틴을 이어가려고 아들 옆에 앉았습니다. 아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게임을 이어서 했지요. 질문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눈으로 보여 화가 나 tv를 뚝! 꺼버렸습니다. 그리고 "엄마랑 얘기좀 하자, 건우랑 얘기가 하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짜증을 내며 "난 지금 엄마랑 대화하지 않을껀데, 왜 마음대로 티비를 끄는데! 지금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다 날아갔잖아!" 라고 화를 냈습니다. 

 

순간 너무 미안했습니다. 겉으로는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지만, 되돌려 생각해보니 나는 무례했습니다. 대화는 둘이 하는 건데 내가 이 순간 대화를 하고 싶다고 내 권력(?)을 이용해 아들을 존중하지 않은 채 강요했습니다. 엄마가 하는 갑질이란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아이에게 사과한다고 엄마의 권위를 잃지 않으니까요. 한 숨돌리고 아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엄마가 힘이 더 쎄다고 건우한데 강제로 대화하자고 그랬네. 티비를 꺼버리고 강요한건 미안해. 근데 엄마말에 집중하지 않고, 듣는둥 마는둥 하는 니 태도가 엄마를 화나게 했어" 제 말을 듣던 아들의 화는 조금 누그러들었습니다. 그리고 10분 후 대화하자고 얘기해 주었지요. 

 

우리 아들은 엄마인 나에게 정말 부당하다고 느낄때면, 끝끝내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냅니다. 유치원에 아들을 보내고 내 일정을 맞추기위해 분주하게 아침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지요. 빠릿빠릿 움직이지 않고 장난을 걸어오는 아들에게 화를 크게 낸적 있습니다. 자동차 뒷문을 열어 아들을 내리려하는데, 차문 잠금장치를 눌러 장난을 친 것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웃으며 받아줄 장난이었지요. 그런데 큰소리를 치며 화를 버럭 내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유치원 정문에 서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자신에게 화내는 건 잘못된 것 같다며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쪼꼬만게 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과를 받기위해 요구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나는 어린시절, 한 번도 그런 용기를 내본 적 없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나서 나에게 화풀이 하는 엄마에게 찍소리 하지 못했지요. 나의 부모는 사과를 하지 않는 부모였습니다. 그러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놨던 감정을 엄마에게 얘기한 적 있었지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들을 낳고 나 또한 엄마가 되고나서 한 일입니다. 오래됐지만 나에게 너무나도 생생한 아픈 기억을 꺼내 엄마에게 얘기했을 때 엄마는 결단코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니가 말하지 그랬어! 난 몰랐지!"하는 수준으로 끝나버렸지요. 매우 허탈했습니다. 

 

 조금더 나이를 먹고나서 알았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기본적으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관계라는 걸요. 부모는 자식을 온마음으로 사랑하지만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부처와 테레사 수녀가 자식을 키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모든 자식과 부모사이에는 화해가 필요하고, 사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부모가 나를 사랑했으나, 그들에게 상처받았던 만큼 내 자식 또한 나에게 상처받을 것이란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아니라 친구로 만났다면 좋았을껄~'하는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부모는 자식이게 사랑과 더불어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드리고 나서 또 깨달은것이 있습니다. 자식은 그 상처를 깨고나와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 그런면에서 나는 완성된 어른은 아닙니다. 여전히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면서, 그들이 주는 상처가 버거울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다짐합니다. 나는 내 사랑이 아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게 언제든 사과할 겁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100번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미안하다는 말도 100번 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도 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는 오늘도 너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