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디자인 연구소 [오늘]

"상 못받아도, 즐길 수 있어" 본문

진로상담사의 육아일기

"상 못받아도, 즐길 수 있어"

O:nle 2022. 5. 25. 12:17

"학교에서 친구 얼굴 그리기 했는데, 나는 그림을 못그리는 것 같애. 상을 못받는 다는 건 그림을 못그린다는 걸 증명하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림엔 재능이 없나봐."

 

"그림은 5-2=3인것처럼 정답이 없어. 그래서 엄마 생각엔 못 그리고 잘 그리고는 없는 것 같애. 어떤 화가는 살아생전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죽고 난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작품에 열광하는 일도 있어. 건우는 오늘 하루안에, 오늘만의 잣대로 평가했을 때 상을 못받은거야. 오늘 상을 못받았으니 재능이 없는 건 아니야. 그래서 엄마는 아주 가끔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해. 상은 안받았어^^" 

 

학교에서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건우도 한 친구의 얼굴을 열심히 그렸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니 상을 못받겠구나 생각했고, 실제로 상은 받지 못했다. 불연듯 내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유치원에서 그림상을 받아본 적 있다. 큰 트로피를 받으러 어딘가를 갔고, 엄마와 함께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이상했다. 나한테 한번도 먼저 말을 걸어온 적 없던 유치원 선생님이 점심먹고 내 옆에 앉아 말을 걸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뭔가 상을 받으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구나" 갑자기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후엔 상을 받지 못했고, 그림 그리는 일이 썩 흥미롭지 않았다. 학교를 가서 다른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더이상 그림학원을 가려고 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는 데, 배우거나 그것에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미술학원 앞을 걸어다니면 연예인의 초상화를 똑같이 그린 작품들이 전시돼 있거나, 너무 유명한 고전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그려 스킬을 뽑내는 작품들이 있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 나는 여전히 그림을 '못'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즐겨선 안되는 사람은 아니다. 

 

그림그리는 일은 인간의 걷기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활동이란 생각이 든다. 글이 없었던 그 옛날에도 벽에다 자신이 먹고 사는 방식을 그림으로 사람들이 그려놨다. 얼마전 가족 여행으로 경주를 갔다. 안압지라 불리던 곳에서 발견된 여러 전시물이 박물관에 있었다. 그 중 흙으로 인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다. 손가락크기 만한데, 아들이 어몽어스를 찰흙으로 만들어 갖고 놀았던 것이 생각났다. 만들기, 그리기와 같은 활동은 과거에도 너무도 일상적인 놀이였는데, 왜 우린 잘 해야만 그것을 계속할 수 있게 된걸까? 

 

나는 똥손이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 집에 걸고, 꽃을 사서 꽃꽂이해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뜨개질을 해서 체온유지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치마를 뜯어 텀블러 주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그릇을 만들어 반찬그릇으로 쓰기도 하고, 종이접기로 집안에 장식품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누군가 상을 주지 않아도 손으로 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이다. 우리 아들이 그림그리기에 재능이 없어도 상관없다. 직업으로 삼을게 아니어도 괜찮다. 이 활동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