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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고민

시작하는 n잡러를 위해서

O:nle 2021. 4. 29. 10:40

사무직 직장인으로 월급을 벌며 생활하는 있는 A씨, 퇴근 후 웹툰을 그려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합니다. 아주 적지만 광고비를 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얘기할까요? 사무원이 아닌 웹툰 작가로 소개하면 문제가 될까요? 이 사람은 '자아 정체성'을 어느 직업과 더 가깝게 여길까요?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르며 다수직업의 경우 이를 분류하는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취업시간 우선의 원칙으로 보다 긴 시간을 투자한 직업으로 분류합니다. 피부과의사가 되기위해 6년 이상의 훈련 시간이 걸렸고, 타투이스트가 되기위해 훈련한 시간이 1년이었다면 이 사람은 피부과의사로 분류됩니다. 두번째는 수입우선의 원칙입니다. 말그대로 더 높은 수입을 가져다 주는 직업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대학교수이면서 연구원인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연구를 통해 버는 수입이 높다면 이 사람은 연구원입니다. 마지막은 조사 시, 최근의 직업을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칙과 별개로 실제 개개인의 정체성과 가깝다고 느끼는 직업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체능의 경우, 그 직업을 갖기위해 투자해온 시간을 정량화하기 힘듭니다. 피부과의사가 되기위해 6년을 공부했다고 했으나, 타투이스트는 생각하기에 따라 피부과의사가 되기위해 썼던 6년의 시간을 포함시킬 수도 있지요. 대부분의 시간을 주부로 쓰고 있지만 1년에 한 두 번 있는 강의에서 "저는 그때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강사가 자신의 정체성에 가장 가깝다고 느낄 겁니다. 이 분이 자기소개를 하며 주부가 아닌 강사라고 주장할 때, 그릇된 것일까요? 

 

직업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눈뜬 시간 중, 우리 대부분은 가장 긴 시간동안 '직업인'으로 활동합니다. 직업인으로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고, 직업인로서 대인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업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끄집어 냅니다. 그러나 앞서 본 사례처럼  그동안 내가 투자한 시간(근무한 시간), 내가 성취한 것(성과)을 꼭 '나'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소득이 적고, 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적고, 그 일을 한지 매우 짧다해도 상관없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 어떠한 일을 할때, '가장 나 답다. 내가 원하는 미래상이다'라고 생각된다면 지금은, 그것이, 당신의 본업입니다.  

 

조금 돌아돌아 이 주제를 꺼내게 되었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자기 인정'과 연결됩니다. 직업 전환을 위해 다양한 일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위축되고 소심하게 프로필을 꺼내보일 때가 있습니다. 대학교 전공을 살려 프로그래머로 10년간 일하던 분이 취미로 시작한 플로리스트로 직업전환을 시도할 때, '내가 전공으로 한 것도 아닌데...' '자격증만 땄지, 내 가게도 하나 없는데...' 이런 생각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을 플로리스트로 알리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의뢰가 들어와도 서비스를 제공하질 못합니다.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한 노력이 지속되질 못합니다.  

 

프로는 내가 아니라, 타인이 인정해줄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보는 남이 아니라 내가 인정해주면 시작됩니다. '숙련된 나'만을 정체성으로 갖고 싶은 사람들은 새로운 직업을 얻기 힘듭니다. N잡러가 되고자 하는 분들, 또는 직업전환을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자신의 정체성 중 미숙하고, 초보적인 나를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프리워커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퇴사 후, 창업과정을 담은 글입니다. 유튜브 'MoTV' 채널로도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그들은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다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론칭하게 됩니다. 책 가운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소호는 10년을 브랜드 기획자 혹은 마케터로 살았지만 모베러웍스와 모티비를 만들며 스스로를 '프로듀서'라고 소개했다. 프로듀서 경력이라곤 단 1개월도 없으면서 말이다. 스스로의 직종부터 새롭게 만든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놀고 있네'하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시선일 뿐이고, 소호는 스스로의 시선에 더 집중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프로가 만들어내는 A급문화, 고급형, 월드클래스를 좋아하지만 B급문화, 보급형, 동네클래스를 필요로 합니다. 미흡하지만 잘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초보운전' 잘 보이게 붙이고 운전을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자신있게 '나 (초보) 운전자다'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시선에 더 집중해 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