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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돌봄을 위한 공부는 무엇일까? 본문

책-임자(이 책의 임자는?)

자기돌봄을 위한 공부는 무엇일까?

O:nle 2021. 2. 10. 14:38

이 책은 <노오력의 배신>이란 책을 낸, 성과주의에서 청년에게 가혹한 노오력을 요구해온 사회적 분위기를 날카롭게 꼬집어낸 엄기호 작가님의 책입니다. 저에게 취향저격의 책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새로 구입하게 된 책이었지요.  밑줄 박박 그으며, 다시 읽고 싶어서였죠. 늘 갖고 있던 질문에 대한 통찰력있는 답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성인들의 진로상담을 하면서 제가 꿈꾸는 소셜임팩트는 우리사회에 성공의 정의가 조금은 균형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개개인이 본인과 닮은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하나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각기 다른 삶을 살게되면 남과 내 삶을 쉽게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말한 적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개개인이 가장 창의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우린 소수만이 위너가 되는 경쟁에 내몰려 대다수가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나답게' 살기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를 아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위해 상담시간에 질문을 던집니다. 과제를 제시합니다. 자신을 알기위해 과거 '성찰'을 시작합니다. 나의 욕망 혹은 가치에 집중합니다. 내가 가진 욕망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로 삶을 대합니다. 그리고 현재시점에서 일과삶에 작은 변화를 시도합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겁니다. 먼저 삶의 주도권을 '나'로 가져옵니다. 이를위해 좋은 습관을 만들고, 강점을 일

로 다룹니다. 그렇게 내 가치가 통합된 하루를 차곡 차곡 쌓아가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좋은 사회란, 사회만 훌륭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별 볼 일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훌륭해지는 것을 공공선으로 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앎이다. -228p

 

이런 기조를 갖고 상담하면서 늘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책에서 이와 관련된 구절을 찾아봅니다.   

 

첫번째는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과 온전히 분리할 수 있는 가? 그럴 수 없다면 자본주의 '성공제일주의' 사회에서 나의 욕망을 실현하는 일이 '나답게' 사는 법이 맞는가?

 

우리는 흔히 자기자신과 욕망을 동일시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 드러내는 바가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곧 나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나를 배려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명한 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위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삶을 노예의 삶이라고 불렀다. '하고 싶은 것'에 끌려다니는 삶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의 현자들은 욕망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쳤다. 욕망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쳤다. 욕망의 주인이 되는 길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언제든 그것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의 힘은 이루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그만둘 수 있는 힘이다.  - 161p

 

자아실현만으로 삶을 만족할 수 있는 가? 

 

이 시대의 자아실현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 '자아실현'이란 이름으로 누구나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해지지만, 그 실체는 '성공'이기에 실제로는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실체는 성공인 자아실현에서 절대다수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고 패배자가 되리라는 공포에 일상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그 결과, 아예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성장 자체를 포기하는 파국적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아실현은 이중의 압력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압력이, 다른 한편에서는 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명령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다. 전자에 중심을 두고 후자를 달성할 것인가, 후자에 중심을 두고 전자를 이룰 것인가를 두고 2가지 '길'이 생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관건은 둘 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첫 번째 길이자 이 시대의 최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떼 돈을 버는 것이다. 이 두을 합친 것이 곧 성공이다. 이 시대의 아이콘이 잡스나 마윈이 된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찬양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걸 이루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과연 그들이 이루지 못했어도, 즉 성공하지 못했어도 그들에게 위로 수준을 넘어서는 찬양과 존경이 쏟아졌을까? '하고 싶은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성공할 수 도 있는 게 아니라, 성공했기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공할 때까지 해야 한다.  -127~8p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고, 정확히 무엇을 알아가기위해 공부하나? 

 

참된 나를 오직 모를 뿐이라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 자아실현과 자기 배려가 '나'를 바라보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자아실현에서는 내가 나를 잘 안다고 가정한다. 내가 누구이고 원하는 게 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그 '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알고 있는 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아'가 앎과 배려의 목적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물론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 관해 모름을 발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기를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깨어나 모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배려의 출발점이다.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를 출발점으로 삼아 자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며 모르는 자기를 발견하는 것, 즉 자기에 관해 알아나가는 것이 자기 배려에서 바라보는 '자기에 관한 앎'이다. 여기에서 자아는 실현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 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발견하는 진로교육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을 돌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발견할 수 있는 전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자아실현'에서 '자기에 대한 배려/돌봄'으로의 전환이라고 제안한다. ... 이것은 자아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착취하고 파괴하는 삶에서, 자기를 보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삶으로 전환할 역량을 키우는 데 중심에 두자는 제안이다. 

 

나의 강점 혹은 재능을 계발하는 것과, 자기배려는 어떻게 다른가?   

 

직업을 갖는 것은 사회적자존감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 사회에서 탁월함을 장착하려면 재능을 발휘해야하는 데, 재능을 확인하려면 '충분히 한계'를 확인하는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도 성과주의가 개입된다. 그래서 많은 회사나 기관이 배우고 익히게 한다는 핑계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모욕과 무시, 그리고 착취를 일삼고 있다. 자기배려가 없는 견딤은 자기계발과 같이 기만적인 자기 착취에 불과하다. 

 

한계, 숨의 길이를 아는 것. 해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자기 숨의 길이'다. 숨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숨의 길이다. 자기에 관한 앎이 있어야 자기를 보호하고 배려할 수 있다. 자기에 관한 앎 없이는 자기에 대한 배려도 불가능하다.  

 

한계를 아는 것을 자기 배려의 방법으로 여겨본 적이 없다는 방증이다.  한계를 인정하라는 말은 자기를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며 패배자로 살아가라는 말과 다름없이 들린다. 또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과 가진것에서 차이가 있으니 그 차이를 인정하고 위계를 받아들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를 배려하라는 말에 솔깃해하면서도 묘한 반발감과 거부감이 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숨의  길이를 안다라는 말은 비교와 극복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내가 '모르던 나'를 '알았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람마 재능이 다른 만큼이나 한계도 다르다는 사실이고, 각자가 그 한계를 아는 것이 자기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끝없이 대화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 책이 그랬습니다. 많은 질문을 저에게 던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경쟁에서 나의 장점마저 나의 한계로 느끼며 스스로를 갉아먹게 하는 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나기위한 공부, 내 욕망을 배려하는 것보다 다스리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느낍니다. 책의 저자는 강의할 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공부를 하러 온 것입니까? 아니면 공부를 구경하러 온 것입니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공부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참된 나'가 아닌 '나에 속한 것'을 목적으로 삼기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전문가' 사회에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현재의 나를 부족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회는 우리모두가 전문가가 되어야한다며, 소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자기 인생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러닝메이트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책을 공유하고, 끝없이 대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빨리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